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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tfic name : Anmoropral Delphinus delphis Uram
metallic material, machinery, acrylic, electronic device(CPU board, sensor, motor, small lightbulb)
65(h) x 150(w) x 55(d)cm. 2002 ⓒ최우람작가
안녕하세요 청두입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인지하는 만물은 모두 순환 속에 존재합니다. 거대한 우주에서부터 원자에 이르기까지 그 규칙은 변하지 않고 적용됩니다. 옛 선인들은 그 순환을 원형이정(元亨利貞), 춘하추동(春夏秋冬)이란 단어로 이야기했습니다. 태아가 어미의 속성을 이식받듯 우주의 품에서 살아가는 지구의 생명 역시 생장염장(生長斂藏)의 순환 속에 살아갑니다.
나와 일생을 함께 보내는 육신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매 순간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찰나까지 닳아갑니다. 매 순간 늙어가고, 병들어가며 죽음의 곁으로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세포마다 생기는 거대한 변화를 모두 느낄 수는 없습니다. 단지 변하는 피부를 통해 어느 기관들이 어떻게 닳아가는지를 추정할 뿐입니다.
피부는 외부로 노출된 몇 안되는 기관 중 하나입니다. 그중에서도 제일 큰 부피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3차원의 시각, 촉각으로 타인을 감각하기 때문에 피부는 하나의 기관을 넘어 ‘그 사람’ 자체로 인식됩니다.
그렇게 표피는 하나의 지표가 되어줍니다. 대상이 태어난 이후 어떤 시간을 얼마나 보내왔고, 얼마의 시간이 남았는지를 직관적으로 추정하게 합니다. 그래서 불멸, 영원함을 꿈꿔온 인류에게 변하지 않는 피부는 끝나지 않는 싱그러움의 이미지로 다가옵니다.
젊은 나이에 비해 낡은 듯한 피부를 가진 사람은 희화화되고, 늙은 나이에 비해 새것 같은 피부를 가진 사람은 부러움을 사곤 합니다. 이 선망의 시선은 때때로 사회적인 힘이 되고, 자본으로 환원되기도 합니다. 욕망의 한 축이 피부에 축적됨을 느낍니다. 이런 현상들을 통해 인간이 유한하고, 변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역설적으로 직시하게 됩니다.
최후의 심판, 미켈란젤로, 바티칸 궁전 시스티나 성당, 1541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명화 1001점
그래서 물리적으로 단단한 물성을 가진 것들은 시간의 제약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거대한 바위와 우뚝 솟은 나무, 그리고 쇠가 그렇습니다. 그중에서도 쇠는 우리가 자연에서 ‘자연적으로’ 마주치기 어려운 물질입니다. 하지만 인간에 의해서 잘 가공된 쇠는 어떤 돌보다도 단단하고, 어떤 나무보다도 하늘 높이 솟을 수 있습니다.
십장생도 병풍, 조선 ⓒ국립고궁박물관
가장 강력한 물성을 가진 쇠는 인간의 손을 거쳐야만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쇠를 다루는 일련의 과정은 우리를 마치 신의 영역으로 한 걸음 나아가게 한 것처럼 보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성장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모습은, 그래서 보는 이로 하여금 경외감이 들게 합니다. 작가 최우람은 그렇게 의식의 공간에서 채집한 생명을 현실로 만들어냈습니다. 그를 통해 현신한 생명은 사람들 사이에서 거대함과 육중함을 과시합니다.
반복되는 행동을 하는 생명은 어쩌면 그냥 기계 장치에 머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여느 공장에서 반복된 원운동을 하는 기계들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최우람 작가를 통해 이 세상에 존재할 기회를 얻은 작품들은 생명으로 느껴집니다. 그 이유는 아마 그것들이 가진 피부 때문일 것입니다.
Scientfic name : Anmoropral Delphinus delphis Uram
metallic material, machinery, acrylic, electronic device(CPU board, sensor, motor, small lightbulb)
65(h) x 150(w) x 55(d)cm. 2002 ⓒ최우람작가
그들의 피부는 빛을 온전히 반사합니다. 흉터와 주름 한 점 없이 매끈합니다. 탄력을 넘어 절대 변형되지 않을 단단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 우린 그들이 다른 세상에서 온 생명이라고 인지합니다. 그리고 에너지원이 존재하는 한 그들의 생명이 지속할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쇠는 뜨거운 액체가 되는 순간부터 인간이 어떻게 가공하느냐에 따라 수많은 가능성들을 가집니다. 그리고 가공의 시간을 거치면서 마주한 사람의 손길과 인연이 쌓여 운명이 되고, 결국 하나의 생명체로 존재할 기회를 얻게 되었을 것입니다. 쇠는 강력한 물성을 가졌지만, 사람에게 순응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쇠가 생명을 얻게 되기 직전, 피부를 구성하는 쇠들은 ‘빠우’ 공장을 마지막으로 거치게 됩니다. 빠우는 여느 도심산업용어들처럼 일제 강점기에 자리 잡은 말입니다. ‘연마한다’라는 뜻을 가진 영어 ‘buffing’이 일본어화 되면서 ‘빠우’라고 불리게 되었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빠우’는 명사로 쓰이며, 보통 ‘치다’라는 동사와 함께 쓰입니다. “빠우 쳐야지”, “빠우 치고 마감해”와 같은 말로 쓰입니다. ‘빠우치는’ 과정은 회전하는 섬유, 종이, 양모 등에 쇠를 마찰시켜 표면을 미세하게 갈아내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빠우 치는 모습
빠우치는 과정에서 미세하게 갈린 쇳가루들은 광약, 기름과 함께 분진이 되어 공기 중에 날립니다. 때문에 빠우 공장의 장인들은 마치 광산의 광부들처럼 검은 쇳가루를 뒤집어쓰고 있습니다. 사장님처럼 산림동 빠우집에 사는 백구 삼순이 역시 일 년에 한두 번 목욕할 때를 제외하면, 언제나 회색빛을 띠고 있습니다.
왼쪽부터 빠우집에 있는 삼순이, 목욕한 삼순이, 지하보도로 길 건너는 삼순이 ⓒ청두
때를 벗어내고 완벽에 가까운 피부를 가지게 된 쇠-생명은 미술관이라는 신전에 들어서면서 살아 숨 쉼을 허락받습니다. 전시장은 그들의 신화가 펼쳐지는 곳입니다. 온전히 그들의 속도로 느리게 움직여도 그만입니다. 관객들이 이것을 보고 사랑하는 마음을 쌓아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신화의 일부가 됩니다. 그리고 이 신화의 이야기는 쇠-생명의 피부가 노화되지 않도록 하는 힘의 원천이 되어줄 것입니다.
Scientific name : Anmoropral Delphinus delphis Uram
aluminum, machinery, acrylic, electronic device
49(h) x 31(w) x 48(d)cm. 2002 ⓒ최우람작가
※ 본 글에서 이야기 된 ‘빠우’ 제작과정을 거친 내용은 『을지로 기술과 예술의 상관관계 조사연구, 중구문화재단』 연구자료에 근거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