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abasis-Cu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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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바시스>, 종이, 유토, 흑연, 철, 가변 설치, 2017 ⓒ전주연




Anabasis는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다'라는 뜻의 그리스어이다. 지면 아래 깊게 깔린 의미를 표면 위로 길어 올릴수 있을까? -전주연-






안녕하세요. 청두입니다.

제가 원고를 통해 여러분을 만나는 것처럼, 오늘날 우리는 다양한 형태로 오가는 ‘문자’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가는 '문자'에는 거리와 시간의 제약이 사라집니다. 수많은 카톡방에 실시간으로 많은 정보가 오가고, 시시각각 뉴스들이 온∙오프라인 매체를 통해 유통됩니다.


오늘날 문자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고, 가공할 수 있고, 유통 가능해졌습니다.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문자들은 쉼 없이 우리 삶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문자’와 ‘소통’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전주연작가〈Anabasis Cutter〉 를 통해 ‘작업의.기술’을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인류가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점토에 선을 긋거나 식물의 섬유, 바위 등에 흔적을 남기기 시작하면서 점점 ‘문자’는 우리 삶에 퍼져나갔습니다. 사회가 고도화되면서 정확한 정보의 확산이 강한 힘을 가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반복적으로 같은 내용을 기록하는 방법이 꾸준히 발전해 왔습니다.


깨달은 사람들이 문자를 통해 하늘의 뜻을 전달하기도 했고, 새롭게 개발된 기술이나 사람들의 사사로운 이야기들이 모두 문자로 기록되었습니다. 남겨진 기록들은 후세의 우리들에게 전달되어, 우리는 시간을 뛰어넘어 사고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습니다.반복되고 변하지 않는 ‘문자’가 켜켜이 쌓여 오늘 우리의 삶을 만들었습니다.



사진. 팔만대장경 ⓒ위대한 문화유산



하지만, 고정된 ‘문자’도 읽는 이에 따라, 시기에 따라, 환경에 따라 매번 유동적으로 달라집니다. 이렇게 발생하는 변수는 수많은 해석의 여지를 만듭니다. 결국 문자를 써 내려간 이의 의도에서 출발했지만, 읽는 이에게 도달 했을 때 이것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화되어 있는 것을 왕왕 느끼게 됩니다. 작가 전주연은 문자를 대하는 우리의 현상을 모티브로 2017년 〈Anabasis-Cutter〉를 탄생시켰습니다.



※ 다음은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Anabasis는 그리스어로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라온다는 뜻을 가진 단어이고 그리스의 전쟁 서사시 제목으로써 군대가 어떤 목표지점으로 행군하다 퇴당하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주는 텍스트 입니다. 군대가 뭍에서 산 위로 행군을 하고 목표지점에 들어가기 전에 다시 돌아 후퇴를 하게 되는데 그 이동 경로가 마치 우리가 텍스트 해석의 세계로 들어갈 때 정확한 의미 지점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에서 후퇴해야 하는 상황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Anabasis라는 용어를 쓰게 되었습니다.



Cutter는 아나바시스 작업의 결과물이 잘리는 순간을 보여주는 작업입니다. 철제로 만든 프레임 안에 와이어를 걸고 그 와이어 위에 유토공을 중심을 잘 잡아 올려놓게 되면 전시 기간 중 서서히 내려와서 잘리게 됩니다. 옛날 중세시대에 사람 가랑이 사이에 줄을 걸어놓고 서서히 신체가 잘리게 하는 고문이 있었다고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잔인한 과정을 생각한 건 아니지만 아무튼 텍스트 위에서 움직인 유토가 반으로 갈라지다가 전시장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는 과정, 그러면서 유토가 찍히고 손상되는 과정까지 텍스트가 해체되는 과정으로 보고 의도하였습니다.


옛글에 담겨 있던 내용은 오늘날 디지털 형태의 ‘비물질 활자판’으로 변환 되어 종이에 새겨졌습니다. 나무나 돌을 깎거나 금속의 주형을 뜨는 기술이 활자를 만들기 위해 발전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들 기술의 발전은 자연스럽게 활자술 발전의 한 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레이저 커팅 기술도 동일한 운동을 반복하여 문자를 복제할 수 있다는 특성 덕분에, 활자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레이져커팅을 위한 파일 제작 과정

종이, 레이저 커팅



고정적인 활자판이 비물질의 형태로 디지털상에 존재하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너무 많이 인쇄해서 활자가 무뎌질 걱정을 하거나, 너무 적게 인쇄해서 활자 제작을 아깝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비물질이 물질을 만들어내는 현상들은 마치 마법 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다른 생명이 예술하는 인간을 본다면 이런 느낌일까요?


기술 발전과 함께 수많은 형태와 형식으로 범람하는 ‘문자’들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많은 ‘문자’가 우리 삶을 성장시키고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어줌은 명백하지만, 그 안에 우리가 안고 있는 한계로 인해 야기되는 갈등의 수 역시 비례해 늘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읽고 이해한다는것, 하지만 그 근원에 닿을 순 없다는 점. 그 한계는 어쩌면 우리의 인지가 문자를 넘어서야 해갈 될 수 있지 않을까 어려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게 됩니다.


존 듀이의 말처럼, 문자가 가진 한계를 예술이 소통하게 해주는 날이 오길 희망해보며 다섯 번째 ‘작업의.기술’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Anabasis>, Paper, plasticine, graphite, steel, Size variable, 2017 ⓒ전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