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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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시소



내가 아주 작을 땐, 더 높은 곳에 오르고 싶으면 놀이터를 가곤 했다. 모래밭 위에 있는 여러 기구들은 내가 더 높은 곳에서 세상을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중 ‘시소’를 특히 좋아했다. ‘그네’와 같은 짜릿함은 없었지만 친구와 서로를 마주하며 같이 놀 수 있는 기구였기 때문이다. 서로를 바라보면서 내가 낮아짐으로 상대를 높일 수 있고, 상대가 낮아짐으로서 내가 높아질 수 있었다. 그땐 몰랐지만, 내가 낮아져야 나 또한 높아질 수 있다는걸 몸으로 배웠던 것이다.


시소를 통해 배웠던 관계의 상호성은 나도 모르는 새 체화되었고, 그렇게 성인이 되었다. 이제 다 커버린 육신을 이끌고 청계천 변을 걷다가 빛나는 시소를 만났던 날이 있다. ‘청계시소’라 이름 붙은 구조물은 전혀 시소 같아 보이지 않았다. 마치 공사장의 크레인 모습을 닮아 있었다.


청계천이 복원되고 세운상가와 청계상가 사이엔 ‘세운교’가 축조되었다. 옛 ‘효경교’보다 서쪽에 만들어진 다리는 골목길과 골목길을 잇는 대신 거대한 건축물 두 개를 잇는 다리로 새롭게 탄생하였다. 넓은 다리 위엔 김형기 작가의 공공조형물이 설치되었다. 하늘을 찌르듯 뾰족한 첨탑은 세운상가를 필두로 한 도심산업단지에서 이룩된 IT 강국의 ‘최첨단’의 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청계천 디지털 조명탑, 혼합재료, 김형기, 2007 ⓒ네이버지도



세운상가와 청계상가 사이에 3층 높이로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다시 세운교’가 신축되면서 첨탑이 사라지고, ‘세봇’이 잠시 자리했었으나 곧 이동했다. 이후 세운교 위 예술의 자리는 ‘청계시소’에게 돌아갔다.


어쩌다 다리 위에 시소라고 이름 지어진 구조물이 설치되게 된 걸까. 청계시소는 2019년 미디어 아티스트 전유진 작가, 기계 디자이너 김성수 디자이너, 테크놀로지아티스트 송호준 작가 세 명이 청계천 을지로 일대 제작문화를 알리기 위해 만들어낸 공공예술 작품이다. 제작 중 청계천, 을지로 기술장인들과의 협력은 무척 당연한 과정이었고, 철공소 마을 전체가 직간접적으로 작업에 참여하면서 커뮤니티 아트의 성격까지 가지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청계시소의 중심적인 구동 원리를 실현케해준 공정과정이 바로 ‘정밀’이다. 청계시소의 원리는 간단하다. 일체 전기가 쓰이지 않고, 탑승한 관람객이 페달을 밟으면 시소 반대편의 추가 점점 뒤쪽으로 밀린다. 탑승자의 몸무게에 비례해 뒤로 밀린 추는 점점 중력에 따라 아래로 내려간다. 반대로 관람객은 공중으로 솟아오른다. 페달을 밟은 대가로 청계천 상공에 떠서 주변을 조망할 기회를 얻게 된다.



청계시소Ⅱ 제작 과정 ⓒ청계시소



사람의 두 다리에서 시작된 원운동은 거대한 시소를 움직이는 동력원이 된다. 두 발이 만드는 동력은 시소 안에 수없이 맞물려 있는 부속품을 움직인다. 그 부품은 정밀가공을 통해서 탄생했다. 컴퓨터로 정확하게 설계된 부속품들은 도면에 맞춰 사람이 깎기도 하고, CNC라는 조각 기계를 통해 깎기도 한다. 기계의 경우 x, y, z 좌표에 따라 드릴 날이 움직이며 쇠의 모양을 정확하게 깎아내는 과정을 거쳐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CNC 작동 영상



그렇게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제작된 부품들이 모여 하나의 시소가 되었다. ‘청계시소’가 우뚝 제 위치를 지키고 있는 것은 수많은 공장이 저마다의 역할을 해줬음을 보여주는 증명 같은 것이다.



청계천이 다시 흐르자 하늘을 향한 예술가의 작품이 찾아왔고, 다시 세운교가 연결되자 장인들이 만든 세운봇이 찾아왔다. 그리고 예술가와 장인이 함께 지역을 마주하며 탈 수 있는 청계시소가 찾아왔다.


그 위에 있던 것들이 시대를 반영하고 있었다. 그 변화 과정은 내가 너로 인해 존재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시간이었으며, 서로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청계상영회》에 전시된 「청계시소Ⅰ」, 「청계시소 설계도」, 「청계시소깃발」 ⓒ을지예술센터




시소는 서로가 서로를 마주 보며 탄다. 청계시소에 탄 관람객의 반대편엔 을지로와 청계천이 있다. 한없이 낮은 곳에 계셨던 우리네 아버지들, 어머니들이 삶과 싸우며 만들어온 곳이다. 그들 덕분에 우리는 높이 오를 기회를 얻었다.



청계시소에서 마주한 청계천, 을지로 ⓒ청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