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을지로 골목 곳곳에는, 시간이 내려앉아 있어요. 멀리서 보면 회색빛 도시 한가운데 옹송그린 낡은 유적 같아보이지만, 사실 그 빛바랜 슬레이트 아래에는 여전히 먼지를 쓸어내고 땀흘리며 힘차게 돌아가는 삶의 시간들이 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을지로의 골목을 지날 때면 곳곳에서 발견되는 시간의 기억들이 눈에 들어오곤 해요. <중심잡지>에서는 바로 이곳 을지로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색깔들을 꼽아보고, 그것을 ‘을지의. 색’이라 명명하여 소개하기로 했습니다. 단순히 흐려지고 바랜 것이 아니라, 끈질기게 시간에 맞서 달려와 삶의 증거로 빛나고 있는 예쁜 색들을 말이죠. 이번 컬러는 ‘을지로 더스트베이비블루’ 컬러입니다. 센터 사무실 창문에서 내려다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중앙 건물의 외벽이 바로 이 색깔이에요. 파랗고 쨍한 하늘과 다르게 세월의 흔적이 타일과 어우러져 은은한 존재감을 드러낸답니다. 을지로의 모든 먼지가 한 번씩 스쳐지나가 색이 바래졌지만, 지붕 위에는 푸릇한 들꽃과 장독대 엣지를 그대로 갖고 있는 낭만이 흐르는 건물이에요. 을지로의 세월과 먼지를 담은, 그러나 도라지 위스키같은 낭만이 배어있는 베이비블루 컬러. 이번 주의 을지의.색 입니다.



사진 - 오창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