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을지로를 지나다보면, 벗겨지고 있는 간판들에 자꾸 눈이 갑니다.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밖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사물들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는 걸까요?
오늘 소개해드리는 신광시보리 간판의 블루는 치열한 고민 끝에 결정이 되었습니다. 간판 하나에도 소개하고 싶은 색깔 여럿이 한꺼번에 담겨 있었기 때문인데요. 벗겨져가는 ‘시보리의 레드’도 너무 아름답고, 얼마나 힘주어 칠했는지 여전히 그 색감을 유지하고 있는 ‘신광의 짙은 남색’도 소개하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결국 결정하게 된 것은, 바로 가슴이 울렁거릴만큼 멋지게 느껴진 전화번호를 보고나서였습니다.
전화 二七四 - 八八三五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선명하게 씌여있는 한자 번호가 너무나 멋집니다. 우리는 간혹 우리의 전화번호를 인터넷 게시판 어딘가에 남겨야할 때,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숫자 0을 알파벳 O로 표기하기도 하죠. 한자로 전화번호를 표기했다면 0은 무엇으로 대치했을까, 이런 우스운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주소를 첨부하니 을지로에 오실 때 한번 눈여겨 봐 주세요. 곧 추운 겨울이 오고 눈이 내리면, 간판 위에 소복히 쌓인 눈이 어떤 느낌일지도 기대가 됩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힘주어 쓴 사람의 미세한 강약의 감각과 붓의 결까지 느껴지는 숫자들의 블루, 이번 주 을지의 색.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