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 원옥간판 화이트



언젠가 하얀색 바탕이었을 원옥철강의 간판은, 이전에 소개드렸던 박제된 듯한 색들과는 다르게 세월을 ‘정통으로’ 맞았습니다. 몇 번이고 덧칠되었다가 벗겨지기를 반복해 이제는 그냥 방치되어버린 걸까요? 녹이 슬고 페인트가 벗겨져 이제는 아래의 번호도 흐릿해져 읽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대림상가와 세운상가 사이, 잠시 번쩍이는 조명들에 시선을 빼앗겼다가 산림동 골목으로 접어들면 큼지막하게 눈에 들어오는 원옥철강. 을지예술센터를 처음 방문할 적에 가장 인상깊었던 간판이었습니다. “와, 이것이 을지로 바이브인가!”


원옥철강의 글씨 위를 자세히 보면, 덧칠되었던 글씨가 글자모양 그대로 떨어져 나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보면 건물을 압도하는 간판의 사이즈와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외관에 오래된 것들에 대한 존경심이 저절로 우러납니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얼마 전 폰트에 시간의 흐름을 더한 ‘을지로 10년후체’를 발표했습니다. 세월에 따라 벗겨져가는 간판들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해요. 간판에 줄줄이 물든 녹과 벗겨진 자국들을 보면서, 우리는 저 간판도 언젠가는 새하얀 바탕색을 뽐내며 빛났던 적이 있었음을 떠올리곤 합니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세월이란 무엇인가,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문득 노인들의 얼굴도 언젠가는 주름없이 뽀얀 아이의 피부였던 적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립니다. 때로 주름과 흰머리가 싫다며 감추는 분들도 있지만, 내 주름은 곧 내 인생의 훈장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보기도 하죠. 얼굴에 깃드는 세월을 위풍당당하게 보여주는 주름처럼 세월을 고스란히 이겨내고 버텨왔음을 증거하는 녹슨 화이트, 바로 이번 주 을지의 색.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