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 큐레이션 | 중심잡지 x 장유정
들어가는 말👀
이번 주 <중심잡지>에서는 성북구립 최만린미술관의 장유정 큐레이터를 만났습니다. 다양한 예술가들이 모여 살고 있는 성북은 예술가들의 네트워크가 활발하고, 또 그것을 통해 재미있는 작업들이 많이 일어나곤 하는 지역인데요.
장유정 큐레이터는 성북창작예술터에서 ‘성북예술동’과 ‘성북도큐멘타’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고민했던 고민들을 이야기했습니다. 예술가들은 지역과 어떻게 만나고, 또 어떻게 지역에 자리잡을 수 있는지 그 고민의 결과물들이 어쩌면 이 두 개의 프로젝트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중심잡지>와 장유정 큐레이터가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었는지 함께 보실까요?

장유정 ⓒ오창동
네트워크와 ‘성북예술동’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먼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장유정입니다. 현재는 성북문화재단 산하의 성북구립 최만린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성북문화재단은 잘 알려진 것처럼 지역이나 네트워크를 강조하는 사업들을 많이 하고 있어서 이곳에 오면서 저도 여러 가지로 확장이 되었어요.
이제 성북문화재단에 온 지 7년 정도 되었는데, 시각예술을 베이스로 지역의 공간이나 공간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건축이나 디자인, 인문학 등으로 확장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성북문화재단은 지역의 네트워크를 활용한 여러 가지 사업들을 펼치고 있는데요. 아무래도 지역이 가지고 있는 특성과 연결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성북은 어떤 곳인가요?
성북동은 예전부터 근현대 문학인들이나 예술가들이 계속 살아오던 곳이에요. 사대문 밖이지만 사대문과 가까우면서 자연환경도 좋아서 작가들이 자리를 잡고 많이 사셨거든요. 그런 환경이다 보니 주민들도 그런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예술과 상관없는 자영업을 하시지만 문화적인 소양이 있고 예술에 관심이 많고 활동하는 걸 즐기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그런 문화적 토대에 미술 기관이나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예술가들도 상당히 많은, 문화적 자산이 풍부한 곳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창동
그런 곳이기 때문에 '성북예술동' 같은 프로젝트가 활발히 구성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성북예술동 프로젝트를 진행하실 때에는 여기 최만린미술관이 아니고 성북예술창작터에 계셨죠?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성북예술창작터에서 5년 동안 있었어요. '성북예술동' 프로젝트 같은 경우에는 말 그대로 네트워킹이 강화되어서 만들어진 프로젝트입니다. 제가 처음 성북에 왔을 즈음 다양한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기 시작하고 있었어요. 예술가들의 네트워크도 그 즈음 만들어졌고, 이 예술가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보자고 시작한 것이 바로 '성북예술동'이었습니다.
'성북예술동'이라는 이름 자체도 참여예술가들이 모여서 뽑은 이름이거든요. 행정구역상으로 '성북예술동'이라는 건 없지만 동네 구성을 보면 예술가들도 너무 많고 예술기관들도 많고, 그러면 '예술동'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성북예술창작터를 성북예술동사무소 삼아 시작된 기획이었습니다.
프로젝트로서 예술가들을 모으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예술동에 속했던 작가들이 같이 작품을 내서 전시를 만들기도 하고 다양한 활동들을 했지만, 흥미로웠던 건 성북예술창작터가 작가들이 모이는 거점 같은 것이 되었다는 점이에요. 작가들이 혼자 작업하는 것도 굉장히 좋아하지만, 그래도 뭔가 연결되어 있고 밖으로 활동하고 싶어하시는 욕구들이 또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 장이 만들어졌다는 것에 반가워하시는 눈치였어요. 아, 내 이웃에도 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것들이죠. 처음에 그런 기관이나 네트워크를 조사하고 모았더니 서른 팀이 넘더라고요. 삼선동에는 공방들이 많이 있는데, 영역을 순수 미술에 한정 짓지 않고 생활 미술의 영역까지 폭넓게 가지고 가려고 했습니다.

장유정 ⓒ오창동
지역을 기록하다, ‘성북도큐멘타’
성북예술창작터에 계실 때 시작하셨던 또 다른 프로젝트로 '성북도큐멘타'가 있습니다. '성북예술동'과는 어떻게 다른 사업인가요?
'성북예술동'이 지역에 있는 예술가들을 모아서 진행한 프로젝트라면, '성북도큐멘타'는 시각 예술을 기반으로 성북을 기록해보고자 만든 프로젝트입니다. 처음에는 성북을 소재로 한 예술작품을 모아서 기획한 전시였는데, 한 번 하고 나니 계속 더 해보고 싶은 주제들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매년 주제를 정하고 리서치를 진행한 다음 아카이브 전시를 하는 형태로 지속해오고 있습니다. 성북은 지역 커뮤니티에 대한 고민이 깊은 곳이고, 그런 고민을 바탕으로 도시 한옥, 버려진 공간 등에 대한 리서치와 아카이빙을 최근 진행했어요.
'성북도큐멘타'는 아카이브 전시다 보니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지역의 건축가들, 인문학자들, 많은 분들이 함께 했던 프로젝트였어요.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작가들을 모으고 주제에 대한 리서치와 강연을 진행해요.
강연은 시민들에게 열려있는 형태지만 작가들이 모여서 논의하는 테이블이자 리서치의 일부기도 하거든요. 그렇게 최초 리서치가 끝나면 작가들이 각자 작업에 들어가고, 이 작업들이 모여서 아카이브 전시까지 이어집니다.
2018년 진행하셨던 성북도큐멘타는 새석관시장이라는 오래된 상가 아파트를 주제로 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흥미롭게 보았는데요. 어떻게 주제를 선정하시게 되었나요?
저희가 그 이전에 도시 한옥에 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는데, 그때 같이 했었던 분들과 '쓸모를 다 한 공간'에 대한 프로젝트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러다 새석관시장이라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이곳은 세운상가와 같은 초창기 주상복합건물인데, 저희가 리서치를 진행할 당시 상가에는 한 집만 남아있는 상태로 10년째 재개발 논의만 되고 있던 곳이었어요. 그렇게 방치된 공간을 리서치하면서 사실 성북에 있는 상가 아파트를 다 같이 들여다보려고 했는데, 알아보니 이미 너무 많이 없어졌더라고요.
흥미로운 건, 리서치를 하기 위해서 자료를 찾아보니 같은 상가 아파트인 세운상가에 대한 기록은 수도 없이 나오는데, 새석관시장에 대한 기록은 겨우 한 장이 전부였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권력의 역설 같은 것이랄까요.
지역이나 공간을 기반으로 한 이런 총체적인 리서치에서는 다양한 관계자들의 목소리들이 서로 충돌하는 과정도 드러날 것 같은데요.
'성북도큐멘타'에서 가지고 가는 기조가 하나 있어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고, 주제에 대해 최대한 많은 것들을 보여주고 판단은 보는 분들이 하도록 하자. 물론 이것에 대한 비판도 있었습니다. 단순히 기록만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비판인데요.
하지만 결국 다양한 작가들과 연구자들이 각각의 분야에서 작업을 진행해서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고,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보는 분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한 해 안에 끝내야 하는 시간적 제약도 있고, 공간 안에 거주하는 주민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하고 지역을 바꿔내는 것은 아니라는 한계들이 있죠. 그럼에도 이 도큐멘타 프로젝트들이 정말 개인적으로 의미가 된다고 하는 분들도 있었어요.

최만린미술관 ⓒ오창동
지역과 공공성, 그리고 큐레이터
성북예술동'와 '성북도큐멘타' 같은 프로젝트들을 진행하시면서 지역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셨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나 예술을 가지고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 의 문제일 텐데요. 여기서 조금 추상적인 질문을 드려보자면, 예술은 공공적인 것일까요?
예술과 공공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사실은 작가가 작품을 만들어서 세상에 내놓는 순간 공공성을 가진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보통 우리는 예술과 공공성에 대해서 자의적으로 기준을 만들고 두 가지로 나누곤 합니다. 재단과 같은 곳에서 대중이나 시민을 위한 예술을 하는 것에는 '공공'의 이름을 씌우고, 상업 화랑에 내걸리는 작업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이죠.
하지만 작업을 세상에 내놓는 것 자체가 일종의 공공적인 행위라는 할 수 있습니다. 세상과 소통하기로 결심하고 누군가와의 대화를 전제로 말을 거는 것이니까요.
'공공성'이라는 것 자체가 다양한 맥락에서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반드시 지역 주민이 작업 과정에 참여하거나 하지 않아도, 그것을 구현하는 방식에서 공공성이 강화되는 경우도 많을 것이고요. 그러면 다시 지역의 이야기로 넘어가서, 예술이 지역에 자리 잡고 머무르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요?
예술이 그 지역에 자리 잡는 것은 자생적으로 터전을 갖추는 경우나, 혹은 외부적 요인이 자리를 만드는 경우 둘 모두 가능할 것 같아요. 가장 중요한 것은 필요에 의해 그것들이 발전하는 것인데, 보통 본업이 아닌 것이 지속성을 가지고 이어나가기는 힘들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어떤 매개자가 무대를 만들어주고 엮어주는 것도 필요하고요.
'성북예술동'의 경우 하나의 플랫폼이 되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한 분 한 분 연락을 돌려서 오시라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모여서 '이런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의견을 내시거나 제안을 하곤 하셨거든요. 미리 약속을 잡고 모이는 것이 아니라 동네 마실 가듯 들르셨으니까요.
예술, 그리고 예술가가 지역과 호흡한다는 것을 느꼈던 건, 예술가가 지역 주민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는 것을 보았을 때에요. 지역의 예술이라는 것이 반드시 지역을 소재로 작품을 만드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그 지역에 거주하면서 주변과 영향을 주고받는 것도 해당된다고 보거든요.
그 과정에서 정말 지역에 애착을 갖고 지역의 예술가가 되는 경우들도 있죠. 이순주 작가님 같은 경우는 활동 자체를 해외에서 하셨던 분인데, 성북에 오셔서 작업을 하시다가 작업실 옆 공간을 작가들에게 레지던시로 주셨어요.
작가님의 작업 스타일은 내향적이고 자기 세계를 단단히 추구하는 스타일이셨는데, 작업실을 짓는 과정을 그 지역 분들과 함께했고 주민들에게 녹아들려고 노력을 많이 하셨어요. 그러다 북정 마을에 재개발 붐이 이슈가 되니 마을을 위해서 또 목소리를 내시기도 하고.

장유정 ⓒ오창동
예술가들이 지역에 녹아들고, 같이 호흡하는 과정에서 큐레이터의 역할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큐레이터는 매개자, 혹은 조율자를 맡게 되는 경우가 많고, 때로는 모티베이트 해주는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기회를 만들고, 사람들 사이를 조율하는 것이 큐레이터의 일이 아닐까 싶어요. 기본적인 기획은 당연히 잘 해야겠지만, 작가들의 작업에서도 끊임없이 조정이 필요한데 그런 측면에서 매개자의 역할도 함께 잘해야 할 것 같아요.
큐레이터는 전문가이기도 하지만, 사람들과 보편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언어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예술에 대해서 대중이 가지고 있는 부담스러운 인식들, 지역에서 일을 할 때에는 이것을 완화할 수 있는 장치들을 큐레이터 스스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봐요.
흥미로운 작업들을 해오셨고, 앞으로도 계속 지속할 계획이라고 들었습니다. 끝으로 지금 계신 곳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해주시고 마무리를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성북예술동'의 경우는 성북예술창작터에서 방향성을 잡아가면서 계속해나가고 있고, '성북도큐멘타'의 경우에는 지금 있는 최만린미술관에서 계속 진행할 계획입니다.
최만린미술관은 최만린 작가가 살던 집을 성북구에서 미술관으로 조성한 곳인데요. 작가가 살아오면서 모아온 모든 기록들이 아카이브 형태로 보존되고 있는 곳입니다. 2019년에 사전 개관을 했었고 올해 본격적으로 개관했는데, 기획전도 진행하고 더불어 성북에서 진행되었던 프로젝트들의 아카이브 정리도 하고 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성북에서 진행하실 작업들이 기대됩니다. 지역과 호흡하는 예술의 다양한 모습을 계속해서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장유정(큐레이터) 대학에서 국문학을 대학원에서 미술사학을 공부하고, 디아모레뮤지엄(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샘터화랑과 중국 상하이 wellside gallery에서 일했다. 상하이에서 돌아온 뒤 a* lab이라는 1인 문화기업을 설립하여 Art Space53 전시 기획 및 운영, 미술 관련 강좌 및 답사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였다. 2014년 성북문화재단 입사 후에는 ‘지역과 미술’, ‘아카이브’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성북예술동(2015- 2018)과 성북도큐멘타(2014- 현재),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서울-성북편, 2017), 제주4.3 70주년 기념 네트워크 프로젝트(2018) 등 지역 연계한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기획·진행하고 있다. 특히 도시의 공간과 그 속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 이를 순수미술에 한정하지 않고 디자인, 건축 등 인접 분야로 확장하여 전시, 워크숍, 강좌, 아카이브 등을 통해 풀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