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잡지>의 에디터 릳(a.k.a. RD), 그는 누구인가?

2020년 한 해 동안 여러 기획자들을 만나보았고, 다양한 작업과 방향성들을 소개해드렸어요. 저 개인적으로도 흥미롭고 보람찼던 시간들이었는데요. 그런데 저희 을지예술센터에서, 2020년 한 해를 정리하는 의미에서 에디터 릳을 인터뷰해보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네? 저를요??


그동안 중심잡지를 열심히 만들어오면서 인터뷰 사진을 통해 간간이 출현하기는 했지만, 제 이야기를 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쉬어가는 느낌으로, 을지예술센터 동료들이 저에 대해 질문하고 그에 답해보았습니다. 에디터 릳, 그는 누구인가!





Q. 간단한 자기소개 해주세요. 인터뷰 할 때 원래 이런 거부터 하지 않나?


하하 안녕하세요. 을지예술센터에서 <중심잡지>를 만들고 있는 에디터 릳이라고 합니다. 중심잡지를 만들기 전에는 공연예술 쪽에서 글을 쓰고 이것 저것 다양한 일들을 했었어요. 원래는 사회학과 문화연구를 전공했는데, 어찌어찌하다보니 예술과 얽혀서 살고 있네요.


우연한 기회에 아는 분에게 을지예술센터를 소개받게 되었고, 작년 여름에 합류하여 일주일에 한 번 발간하는 뉴스레터 <중심잡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벌써 해가 지났다니 믿기지가 않아요!


Q. <중심잡지> 구독자가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늘고 있다고 들었어요. 릳에게 <중심잡지>란 어떤 것인가요?


음, 갑자기 엄청나게 어려운 질문이네요? 어느 새 일주일에 한 번, 발간 스케쥴에 맞춰 생활이 바뀌어버리면서 익숙해져버렸지만, <중심잡지>를 처음 만들던 여름에는 이런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던 것 같아요.


특히 저는 원래 시각예술 쪽에서 일을 하던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제대로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다행히 을지예술센터의 PM 동료들이 잘 받아주어서 나름대로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뉴스레터에 최대한 실어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중심잡지>는 저에게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가능성을 보게 해준 창이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너무 거창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사실은 뉴스레터를 꾸리고 만들어가는 저도 콘텐츠들을 만들면서 새롭게 알아간 것들이 많았거든요.


특히나 제가 원래 일하던 분야가 아닌 곳에서 새롭게 사람들을 만나고 그 작업들을 보는 건 저에게 정말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 제가 이전까지 보아왔던 것과 다른 것들을 접하면서, 새로운 가능성들을 상상할 수 있게 됐달까요?


Q. 말이 나온 김에, 그 이야기도 같이 해보죠. 릳은 원래 공연예술 분야에서 글을 쓰고 예술가와 기획자들을 만나왔는데, 2020년에는 시각예술 기반의 기획자들을 만나서 뉴스레터를 만들었죠. 다른 장르를 접하면서 느낀 점은 무엇이고, 또 그것을 통해 변화한 부분이 있었나요?


말한 것처럼 저에게는 생소한 영역이었고, 그래서 <중심잡지>를 처음 만들 때에는 큐레이터의 역할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도 잘 몰랐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인터뷰를 점차 진행해가다 보니 공연예술에서의 기획자와 시각예술에서의 기획자가 가진 차이가 점점 보이더라고요.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얼마 전 인터뷰에서 언급되기도 했지만, 공연예술에서 기획자가 프로듀서로서 가지는 역할과 시각예술에서 기획자가 큐레이터로서 가지는 역할은 많이 다르거든요. 그래서 ‘큐레이터’라는 존재와 그 역할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나아가서 기획자들이 생산하는 글의 의미와 비평가의 역할같은, 복합적이고 구조적인 고민들을 좀 하게 된 것 같아요.


변화한 부분이라고 한다면, 다른 상상을 할 수 있게 되었달까요? 극장이라는 블랙박스 안에서 진행되는 공연예술과, 화이트큐브를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시각예술은 굉장히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어요.


물론 지금은 서로 그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도 많이 있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의 문제는 해당 예술이 어떤 수단과 목표를 가지고 지향점으로 달려가는지를 결정하는 것 같아요.


제가 <중심잡지>에서 다양한 시각예술 작품들을 알게 되면서 새롭게 느낀 것은, 제가 이전까지 ‘어떤 틀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 아닌가’하는 점이었어요. 세상에는 생각보다 되게 다양하고 재미있고 머리를 번쩍 꺠우는, 그런 예술작품들이 많더라고요.


제가 이전까지 갖고 있었던 공연예술의 틀에서는 쉽게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이, 어쩌면 예술작품으로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새롭게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Q. 2020년은 코로나 19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한 해가 되었죠. 사회 전체가 비대면으로 변화하는 과정이었는데, <중심잡지>는 그 가운데서도 꾸준히 인터뷰를 통해 소식을 전해주었어요. 그 속에서 느끼신 점과, 그 시간을 반영해서 예술계, 혹은 릳 본인이 나아갈 방향을 예측해본다면요?


우선 최근에 진행되었던 여러 건의 인터뷰에서, 방역지침 준수를 위해 인터뷰를 하면서 마스크를 계속 쓰고 있었던 게 생각나네요! 당연한 것이긴 하지만, 마스크를 쓰고 한두 시간을 누군가와 끊임없이 이야기한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더라고요. 휴우.


정말 힘든 한 해였죠. 굉장히 많은 생각들이 들었던 것 같아요. 뉴스레터, 특히 한 주에 한 번 발간되는 뉴스레터라는 건 그때그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전해주는 것이 중요한데, 저번 주에 비해 심각해지는 시국의 상황들, 강화되는 사회적 거리두기 같은 것을 언급하게 될 때는 여러 가지 고민들이 많이 들었어요.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해주고 싶지만, 미술관과 극장은 닫히고, 필수적인 것을 제외하면 집에 있는 것이 최선인 세상이 되었잖아요. <중심잡지>를 매주 써나가면서 들었던 생각은, 과연 내가 예술에 대해 얼마만큼 이야기하는 것이 맞는가, 하는 고민이었어요.


모두가 힘든 상황에, 심지어는 많은 사람들이 생계마저 위협받고 있죠. 그 가운데에서 얼핏 삶과 동떨어져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예술 이야기를, 어디까지 끌고 나가야 할까? 물론 저는 개인적으로 예술의 궁극적인 부분은 삶에 맞닿아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한정된 지면을 통해 매번 전달하기는 어려워보였거든요.


그러면서 동시에 예술의 역할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도 했죠. 폐업이 속출하고 산업 전체가 불안해지는 이 시기에, 우리가 예술(혹은 예술적인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이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 자꾸 들더라고요.


제가 코로나 시국을 겪으면서 내린 결론 중 하나는, 이제 아마도 예술은 ‘삶을 향해 직진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이에요. 미술관과 극장이 닫혔기 때문에, 이제 예술은 그런 것들을 거쳐서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없어요. 직접적으로, 눈 앞, 삶 앞으로 달려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 글을 보고 계시는 예술가들이 있다면 모두가 공감하시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는 이제 발판을 잃었고, 다른 판을 구상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그게 무엇이든지 간에요.


Q. 오, 갑자기 이야기가 무거워졌어요. 어.. 번외로 들어온 질문이 하나 있는데. 릳은 언제부터 그렇게 다크써클이 있었나요? 다크써클을 달고 다님에도 이 일이 좋은 이유가 있을까요?


어… 흠흠. 제 다크써클이 생각보다… 음 그쵸. 많이 늘어난 것 같네요. 하하.


다크써클을 달고 다닌지는 벌써 몇 년 된 것 같아요. 저는 공연예술계에서 일을 하면서 줄곧 가져왔던 일종의 좌절감 같은 것이 있었는데, 아마 몇 년 전부터는 그 좌절감이 본격적으로 발화되는 지점이 아니었을까, 뭐 그런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그러면서도 왜 이 일을 계속 하고 있는가. 거칠게 이야기하면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사실 저는 예술에 계속 붙들려 있는 이유가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아까도 잠깐, 새로운 가능성들을 상상하는 이야기를 했었잖아요. 저는 예술이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 있다고 봐요. 여기서 중요한 건 ‘사람’이 아니라 ‘사회’라는 거죠. 개개인의 감동도 물론 예술에 있어서 중요하지만, 제가 관심있는 것은 감각의 체화를 넘어서서 사람들 머리 저편에 자리잡고 있는 사회에 대한 인식을 예술이 건드릴 수 있다는 바로 그 부분이에요.


그런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예술을 보면 짜릿하죠. 그리고 그런 것들을 계속 보고 싶고, 만들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그런 것들이 의미있게 작동하는 데 일조하고 싶다는 생각, 그런 것들이 아마 제 다크써클을 붙잡고 늘어지고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다크써클 없애는 데는 뭐가 좋아요?


Q. 음… 을지로 이야기로 돌아와보죠. 작년 한 해 을지로에 있으면서 <중심잡지>를 만드셨는데, 을지로가 가지고 있는 예술잠재성에는 어떤 것이 있다고 보시나요?


이것도 어려운 문제네요. 아니 다들 어려운 문제만 가져오기로 합의보셨나요… 어쨌든. 이 문제 역시도 작년 한 해 동안 계속해서 고민해왔던 부분입니다.


물론 <중심잡지>는 을지로라는 지역 이슈만을 다루는 매체는 아니지만, 처음 인터뷰의 방향을 잡을 때도 지역을 통해 예술이 어떻게 자리를 잡을 수 있는지 고민해볼 수 있는 내용들을 담으려고 했었어요.


저도 지역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을지로의 역사와 현재를 알게 되었고, ‘힙지로’ 안에 숨겨진 ‘진짜 을지로’의 모습도 보게 되었고요. 그러면서 들었던 질문이 바로 말씀하신 것과 같은 질문이에요.


먼저 그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예술잠재성’이 무엇인지 정의를 내릴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예술잠재성이 있는 곳이라는 것은 예술 작품이 많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뜻인지, 아니면 예술을 즐기러 오기 좋은 곳이라는 뜻인지, 그도 아니면 그냥 예술가들이 몰려 사는 곳이라는 뜻인지. 여러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죠?


또 한편으로는 ‘예술’이 마침내 꽃피웠다고 할 수 있는 그 결과물을 무엇으로 볼 지에 따라 정의가 갈릴 것도 같아요. 작품이 지역으로부터 많은 소재들을 확보할 수 있다거나, 혹은 예술가들이 탄탄한 네트워크를 이뤘다거나, 아니면 엄청나게 비싼(!) 작품이 만들어졌다거나.


만약 ‘예술잠재성’이 ‘흥미로운 작품들이 만들어질 수 있는 지역적/사회적 맥락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라면, 저는 을지로가 충분히 예술잠재성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여기는 서울의 살아있는 유적같은 곳이자, 동시에 아직도 활발히 돌아가고 있는 산업단지이기도 하니까요.


어떤 곳에서 예술이 ‘잘 만들어진다’는 것을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재미있는 예술은 삶 옆에 붙어있는 예술들일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을지로는 재미있는 예술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아주 높은 곳이죠.


Q. 이제 마지막 질문이에요! 2021년에는 어떤 가치를 지향하고, 어떤 역할을 하고자 하시는지요?


개인적으로 2020년은 정말 바쁜 한 해였어요. 11월과 12월에는 잠을 제대로 잔 날이 손에 꼽을 정도로 바빠서,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돌아볼 시간도 없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한 해가 지나갔고, <중심잡지> 첫 해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네요.


최근에 작년 한 해를 정리해보니까, 앞에서 말한 것 같은 깨달음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내가 그동안 머물러 있었던 것을 넘어서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거기에 더 재미있는 것들이 많을 수 있다는 것, 새로운 것을 해볼 수 있다는 것을 말이죠.


2021년의 최우선 목표는 <중심잡지>를 통해 더 재미있는 것들을 선보이는 것이지만(리뉴얼이 진행 중이니까요!), 올해 알고 배운 것들을 더 펼치는 시도들을 해보고 싶어요. 그게 <중심잡지> 안에서 새로운 콘텐츠로 나타날지, 혹은 글이나 새로운 작업으로 나타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보였던 가능성들을 놓치지 않고 의미로 만들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시국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이라 2021년 역시도 모두에게 힘든 한 해가 되겠지만, 부디 조금은 숨 돌릴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해요. 그리고 가끔 <중심잡지> 같은 것을 통해 재미있는 상상을 하실 수 있기를 바라고요.


2021년에도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잘 지켜봐주세요. 감사합니다! 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