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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장인의 화원〉. ©고대웅
안녕하세요!! 저는 청두입니다. ‘작업의.기술’을 통해 첫 인사 드립니다.
저는 2016년 을지로에 터를 잡게 되면서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우고, 만들고, 연구하며 시간을 보내왔습니다. 지난 시간을 거름 삼아 2021년부터 <중심잡지>에 새로 추가된 ‘작업의.기술’이라는 코너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본 코너를 통해서 을지로에 얼마나 많은 물건이 오고 가는지, 그것들을 가지고 예술가들은 어떤 작품들을 탄생시켜왔는지 소개하는 시간을 만들어보고자 합니다.
그 첫 시작으로는, 부끄럽고 오글거리지만 저의 2017년 작인 <장인의 화원>을 다뤄보고자 합니다. <장인의 화원>은 을지로 안의 산림동이라는 철공소 동네 골목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모든 재료를 을지로에 있어온 것들을 사용한 을지로 지역의 기념비이자 을지로의 작은 녹지 공간입니다.

2017년 10월 〈장인의 화원〉. ©고대웅
청계천 방향에서 을지예술센터를 찾아오시는 분들은 창경궁로 5다길 붉은 벽돌 담길을 지나게 됩니다. 그 담벼락을 따라 늘어선 녹지 공간이 바로 <장인의 화원>입니다.
식물들이 뿌리내린 흙이 무사히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틀을 잡아 주는 붉은 빛의 화단은 모두 철로 제작되었습니다. 작품 곳곳에 장인을 상징하는 별자리, 옛 을지로의 풍경, 옛 을지로의 지명 같은 것들을 볼 수 있습니다.

2017년 9월 조성 중인 〈장인의 화원〉 ©고대웅
철공소 골목을 걷다 보면 어느 공장에서는 용접을 하고, 어느 공장에서는 광을 내고 있고, 어느 공장에서는 도색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각 공장마다 자신의 주특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모든 것들이 가능하게 하려면 우선 ‘철’을 판매하는 곳이 있어야 겠죠? 철을 판매하는 곳들을 찾아보면 파이프들이 모양별로 쌓여 있거나, 철판이 규격과 재질에 따라 쌓여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용접을 주 전공으로 삼는 공장들은 원하는 치수와 형태에 맞춰 철을 주문하고 재료를 구매합니다

을지로 골목에서 철 원자재를 팔고 있는 점포. ©고대웅
특히 철판을 판매하는 가게들은 거대한 레이져 커팅 기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SF영화를 보면 우주에서 공중전을 벌이는 비행선들이 레이저를 발사하거나 사람들이 광선검을 가지고 어떤 것도 쉽게 잘라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그 레이저입니다.
노즐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레이저는 순식간에 철판을 잘라냅니다. 1600년대 프랑스 철학자인 데카르트는 천장에서 윙윙거리며 날아다니는 파리를 보고 x, y, z로 구성된 3차원 좌표계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데카르트가 상상했던 좌표계는 이제 철판을 잘라내는 데에도 응용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레이저는 놀랍게도 사람이 입력한 좌표에 맞춰 철판 위를 춤추듯 스쳐지나갑니다. 그 결과로 우리는 제철소에서 나온 철판이 예술 작품으로 변태하는 과정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레이져로 철판을 자르는 모습. ⓒ을지예술센터
<장인의 화원>은 이렇게 철판을 쉽사리 잘라 낼 수 있었기 때문에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원래 화원이 있던 자리는 2005년부터 꾸준히 쓰레기가 쌓여온 곳이었다고 합니다. 길고양이들의 배설물이 쌓여 여름엔 파리까지 들끓었다고 하니 환경적으로도 얼마나 안 좋은 곳이었을지가 상상이 됩니다.
그곳에 화원이 생긴 이후로 길고양이들은 배설할 공간을 찾게 되었고, 식물들을 터전 삼아 작은 생태계들도 생겨났습니다. 골목의 사장님들이 꽃도 심고 물도 주면서 이곳은 여럿이 함께 관리하는 공공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2017년 10월 조성 중인 〈장인의 화원〉 ©고대웅
서울의 도시화가 가속화되면서 주변의 산 풍경들이 사라지고, 을지로는 점차 사막같은 도심 속 공업단지가 되어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때마다 색을 바꾸는 자연이 골목 안에 터를 잡았죠. 이 모습을 보며 작가로서 예술이 어떤 역할을 해낼 수 있는지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었답니다.
<장인의 화원>과 ‘레이져 커팅’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우셨길 바랍니다. 앞으로도 을지로 도심공업 단지에서 탄생한 예술 작품들에 대해 하나씩 펼쳐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2주 후 ‘작업의.기술’에서 다시 만나요! 뿅~!

2019년 8월 〈장인의 화원〉 ©고대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