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인터뷰는 방역수칙에 따라 참여자 모두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들어가는 말
을지로 곳곳에는 숨어있는 전시 공간들이 많습니다. 좁은 골목을 지나다보면 여기가 전시 공간인지 알 지도 못하고 지나치는 곳들이 많죠.
오늘은 그런 숨겨진 전시 공간 중 하나인 ‘가삼로지을’의 운영자 두 분을 만나보았습니다. 가삼로지을은 세 명의 운영자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데, 아쉽게도 한 분은 해외에 있는 관계로 함께 인터뷰를 하지 못했어요.
2018년 말 만들어진 이래, 익명과 가명으로 된 전시들이 기획되어 온 이곳은 작지만 정말 흥미진진한 실험들이 계속되어 왔다고 합니다.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는지, 함께 들어볼까요?

왼쪽부터 서혜림, 김아라 ⓒ오창동
을지로 3가의 가삼로지을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오늘은 공간 가삼로지을을 운영하고 계시는 두 분과 이야기를 나누어보겠습니다. 가삼로지을은 세 분이 함께 운영을 하고 계시는데, 한 분은 현재 해외에 있는 관계로 두 분만 모시게 되었습니다. 먼저 각자 자기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서혜림 : 안녕하세요. 가삼로지을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 서혜림이라고 합니다.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도 들어갔다가 도중에 바깥으로 나오게 되었어요. 아무래도 작업의 환경이 변하고, 그렇게 1년, 2년 정도 작업을 하지 못 하는 상황이 되었죠. 그런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때, 같이 뭐라도 해보자, 하고 만든 것이 가삼로지을이었어요.
김아라 : 저는 대학교와 대학원을 다니면서 계속 학교 안에서만 작업을 했었어요. 보면 활발하게 활동하는 친구들도 많은데, 저는 전시 자체가 하기가 싫더라고요. 작업을 할 때도 이것을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것인가, 이런 고민들이 되게 많았었고요.
그랬다가 대학원에서 혜림 언니를 만났고, 이 기회가 되게 좋아서 가삼로지을을 함께 만들게 되었습니다. 저는 전시 자체가 너무 힘든 사람이어서 학교 안에서만 혼자 작업을 했었는데, 이렇게 같이 하게 된 것이 좋은 기회였던 거죠.
서혜림 : 저희 세 명이 모두 같은 대학원에 있었기는 했는데, 윤정과 처음 만났던 건 학교에서가 아니었어요. 쉽게 말하면 술 마시다 알게 된 친구인데, 처음에는 같은 과인줄도 몰랐죠.
우연히 친해지게 되었는데, 술 마시면서 작업 이야기를 하다가 작업을 정말 제대로 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뭐라도 해야겠다, 해서 아라까지 세 명이 모여서 일종의 작업실 같은 걸 만들어보자고 꾸린 곳이 여기 가삼로지을이 되었죠.
지금 개인적인 사정으로 호주에 살고 있는 김윤정은 저희 둘과 함께 온라인으로 매일 회의를 하면서 실무적인 일을 분담하고 있어요. 멀리 있는 특성 상 주로 작가 섭외나 홍보 홈페이지, SNS 관리 같은 것들을 담당하고 있죠.
특히 전시 이야기에서도 다시 나오겠지만 호주에서 우연히 알게 된 작가들을 기획전에 초대하거나 현지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에게 가삼로지을을 소개하면서 새로운 교류를 만드는 역할을 맡아주고 있어요.

서혜림 ⓒ오창동
처음 공간을 꾸리실 때, 특별히 을지로를 장소로 잡으신 이유 같은 것이 있을까요?
서혜림 : 이태원에서 공간을 보다가 그쪽은 안 되겠다 싶어서, 생각난 게 을지로였어요. 처음에 을지로 3가에 와서 부동산을 돌아다니는데 생각보다 다 너무 비싼 거예요. 그런데 지나가던 길가 전봇대에 붙어있는 ‘방 구함’ 전단지의 전화번호가 왠지 느낌이 오더라고요.
전화를 했더니 어떤 할아버지가 받으셔서, “ㅇㅇ 주소로 가면 열쇠 어디에 있으니까 들어가서 보고 마음에 들면 해”라고 하시는 거에요. 그게 바로 여기였죠.
공간이 작기는 하지만, 사실 저희가 뭐 엄청난 국제적인 작가도 아니고 여기서 일단 해보자, 그렇게 싼 값에 공간을 빌려 시작을 하게 됐어요.
얼마 전 저희가 인터뷰했던 을지로의 공간 OF도 이 건물 5층에 있죠. 신기한 우연 같기도 한데요.
서혜림 : OF와 같은 건물에 있으니까, 관객도 덕분에 많아지고 좋은 것 같아요. 저희가 이 건물에 있다보니까, 여기 옆집 아저씨들은 여기 계속 사는 분들이시더라고요.
여기 사시는 분에게 건물의 유래를 들을 기회가 있었거든요. 이 건물은 재개발이 예정되어 있는 것으로 해서 팔렸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재개발이 진행이 안 되니까 건물을 판 전 주인이 관리만 그냥 하고 있는 상태라는 거죠.
을지로의 많은 공간들이 얽혀있는 문제기도 하죠.
서혜림 : 돌아다닐수록 신기한 곳이기도 하고, 을지로라는 공간 자체가 정말 좋은 것 같아요. 또 공간을 마련하고자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싼 곳들이 곳곳에 숨어있기도 하고요. 구멍들이 있는 거죠. 저희 같은 사람들이 침투하기가 좋은 곳인 것 같아요.

ⓒ오창동
이름을 벗어던지고 이루어졌던 자유로운 실험
가삼로지을은 작은 공간임에도 꾸준히 전시가 올라가고, SNS를 통해서 많이 알려진 공간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그럼 작업실 개념으로 공간을 만드셨던 건가요?
김아라 : 말하자면 처음에는 사실 저희 전시를 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2020년부터는 저희가 아닌, 다른 작가들이 마음껏 전시를 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바꿨지만요. 각자 전시를 올릴 수 있는 공간을 찾기 위해 여기 저기 알아보았는데, 처음에는 이태원 쪽을 알아봤었죠.
서혜림 : 작업실 겸 전시도 할 수 있는 공간을 찾는데, 저희가 돈이 너무 없는 거예요. 이태원 쪽에 괜찮은 공간이 있었는데 접근성이 너무 떨어졌어요. 그러다가 을지로까지 오게 되었죠.
처음 세 명이 만나서 작업을 위한 공간을 만들자고 이야기한 게 2018년 10월이었어요. 일이라는 게 원래 너무 생각을 많이 하고 계획하면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이디어가 나오자마자 바로 공간을 구해서 뚝딱뚝딱 공간을 만들었죠.
일하던 곳에 바로 연차를 내고 ‘4일 안에 무조건 공간을 구한다’고 결심을 했어요. 그렇게 을지로에 공간을 얻었고 2018년 12월에 첫 전시를 여는 것을 목표로 준비를 하기 시작했죠.
그럼 처음 공간을 만드셨을 때에는 세 분의 작품으로 이루어진 전시만 진행되었던 건가요?
서혜림 : 작업을 할 때 이름 없이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명으로 하면 진짜 해보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다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30대 초중반이 되면 작가들은 자기의 세계가 나와요. 자기가 하는 작업을 바탕으로 미디어 작가, 드로잉 작가, 비판적 주제를 다루는 작가, 저마다 주제가 잡히는 거죠. 그런 틀이 답답하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진짜 마구잡이로 다 해보자는 생각에, 세 명이 모두 가명을 써서 전시를 해보기로 했죠.
저도 원래 미디어 작업이나 영화 쪽에서 작업을 해왔었는데, 그때 거의 처음으로 그림 전시를 했거든요. 정말 각자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기로 하고, 홍보도 그냥 SNS에 계정을 뚝딱 만들어서 ‘을지로 3가의 핫한 갤러리’로 열심히 포장을 했죠. (웃음)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SNS에 팔로우가 늘어나더라고요. 우리끼리 멋대로 전시를 했는데 사람들이 관심도 가져주고, 너무 재미있어서 ‘그러면 딱 1년만 여기서 미친듯이 전시를 해보자’고 이야기가 되었어요.
저희 세 명이 가명을 계속 바꿔가면서 한 달에 한 번 무조건 전시를 열어보자는 아이디어였어요. 물론 한 달에 한 번이라는 게 정말 쉽지는 않아서 매 달 전시를 하지는 못했지만, 9번 정도 전시를 만들 수 있었어요.
그렇게 2019년에 가삼로지을에서 공식적으로는 24명의 작가가 전시를 했는데, 실제로는 저희 셋이 다 한 거죠. 이름도 정말 이상한 것들로 계속 바꿨고, 작업들도 어떤 때에는 여기다 텐트치고 야영을 하기도 하고, 사진전을 열거나 캥거루 탈을 쓰고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어요.
캥거루 퍼포먼스는 윤정이 한 작업이었는데, 그 친구가 주로 섬세한 평면 작업을 해왔었거든요. 가삼로지을에서 전혀 다른 작업을 해 본 거죠.

김아라 ⓒ오창동
작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가능성들
이야기로만 들어도 너무 재미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름을 바꾸어가면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들을 시도하시면서,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서혜림 : 이름을 계속해서 바꿨지만 어쨌든 저희가 계속 하고 있으니까, 아는 사람들을 마주치는 경우들이 종종 있었어요. (웃음) 언제 한 번은 관객이 한 명 왔었는데, 제가 아는 사람이었던 거죠. “어? 누나 여기 왜 있어?”라고 물어서 지킴이 알바를 하러 왔다고 대충 둘러댔거든요.
물론 나중에는 어쩔 수 없이 다 알게 되었지만, 그렇게 1년을 꽉 채워서 전시를 했어요. 그러고 나니까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다음에 뭘 하면 좋을까, 생각을 하다가 다른 작가들도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하면 너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다음 전시부터는 다른 작가들의 공모를 받아서 기획전시를 개최하게 됐죠.
어떻게 이어지게 되었나요?
김아라 : 저희끼리 했던 재미있는 경험을 나누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익명으로 전시를 할 작가들을 공모했어요. 아예 대놓고 익명으로 전시할 사람들을 모은 거죠.
서혜림 : 익명 전시에는 의외로 꽤 많은 분들의 지원이 왔어요. 재미있었던 건 저희에게 관심을 가졌던 작가들 중 많은 분들이 30대 초중반 근처의, 자기 세계가 만들어지고 있는 작가들이더라고요.
물론 원래의 자기 작업을 가지고 오시는 분도 있었지만 아예 특이하게 이 공간에서만 할 수 있는 작업을 가지고 온 분도 계셨어요. 이곳을 범행현장으로 삼는 연극 퍼포먼스 같은 것들이 있었죠.
연극 퍼포먼스의 경우 작가님이 원래 연극을 베이스로 작업을 하는 분은 아닌 것 같았는데, 공간이 작으니까 뭐든 해보기 너무 편한 거죠. 저도 은근슬쩍 봤는데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저희들 전시가 마무리된 후 올해에는, 원래 대관도 하고 싶었는데 실제로는 기획 전시와 익명 전시로 꽉 채워진 한 해가 되었네요.

ⓒ오창동
가장 최근에 하셨던 전시 《Missing Futures Inbox - 난 가끔 너랑 어떤 장면을 공유하거나, 같이 이야기를 쓰고 싶어져 (Sometimes I wanted to share a scene with you, or write a story together)》의 경우도 세 분이 직접 참여하신 작업이죠?
서혜림 : 네. 저희가 외국의 세 명 작가들과 같이 한 작업인데요. 호주에 있는 윤정이 시드니의 한 갤러리에 갔었는데 거기에서 어떤 작업이 되게 재미있어 보여서 작가 SNS를 찾아서 연락했대요. 그런데 그 작가도 아는 친구 작가 세 명과 무언가 해보고 싶었던 거죠.
그래서 뭔가 해보자고 같이 단체 대화방을 만들고, 코로나라는 상황이 있으니까 펜팔을 해볼까? 그리고 그걸 작업으로 가져가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김아라 : 그 외에도 기획 전시 같은 경우는 보통 SNS으로 섭외를 진행했던 경우가 많았어요. 평소에 좋아하는 작가들한테 초대를 드리기도 하고, 가삼로지을과 왠지 어울릴 것 같은 작가들에게 SNS로 메세지를 보내서 섭외를 했죠.
참여하신 작가들의 반응도 좋았을 것 같은데요.
서혜림 : 익명전 같은 경우 컨셉을 알려드리겨 하고 싶은 것은 다 하실 수 있게 내버려뒀어요. 그러니까 더 재미있는 연극 퍼포먼스 같은 것들이 나왔고, 작가들도 공간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 재미있다고 하더라고요.
또 저희가 생각보다 도록이나 포스터 같은 서포터를 해드리기도 하니까, 오히려 작가님들이 뭘 막 사주시기도 하더라고요. 공간을 부수지 않는 선에서 정말 뭘 해도 된다고 하니까 좋은 반응이 나왔어요.
꾸려지는 것들이 많은, 굉장히 풍부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도 가삼로지을에서 해보고 싶은 것이 있으시다면요?
서혜림 : 잘 유지해나가면서 최대한 열린 공간으로, 사람들이 여러 가지 변주를 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여기서 작업을 하셨던 작가들 중에 어떤 분이, ‘오랜만에 전시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하셨던 분이 있었어요. 되게 기분이 좋더라고요.
저도 외부에서 전시를 하다가 여기서 익명으로 전시를 하게 되니까, 정말 내가 내 작업으로 다가간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어찌보면 제가 학교를 다녔던 첫 학기의 느낌 같기도 해요. 정말로 리얼한 것들이 살아있다는 느낌.
그런 것들을 다른 분들도 많이 느끼셨으면 좋겠고. 재미있는 공간이자, ‘만만한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것들을 실험해보고 벌일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인터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왼쪽부터 서혜림, 김아라 ⓒ오창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