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호에 소개드린 ‘을지로 루프 청’ 어떻게 보셨나요? 오늘은 그것보다 조금 더 우리에게 가까이 있는 초록을 소개해보려 합니다. 바로 ‘을지로 어닝 그린’이에요.
온통 철과 구리, 나무합판, 낡은 타일로 가득한 을지로의 골목 사이에서 초록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골목 곳곳에 잡초와 들꽃이 불쑥불쑥 솟아날 법도 한데, 그러지 않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답니다.
저녁 6시, 공장이 문을 닫고 퇴근하는 시간이 되면, 철공소 사장님들이 어김없이 골목으로 나오셔서 쓸고 닦고 청소를 하십니다. 작업장과 길에 뿌려진 쇳가루들을 말끔하게 치우는 것이죠.
문득 을지로가 어쩐지 ‘깨끗해보이지 않아서’ 가지 않는다는 몇몇 친구들의 말이 떠오릅니다. 물론 한창 작업이 벌어지는 일과시간에는 조금 어지러울 수 있지만, 사실 을지로의 골목은 온갖 쓰레기와 토사물들로 지저분한 여느 번화가의 거리들보다도 훨씬 깨끗한 곳이거든요. 을지로는 오래된 곳이지만, 결코 지저분하지 않습니다.
을지로에서 햇빛을 받으면 광합성을 하듯 푸르게 빛나는 초록색을 찾았습니다. 바로 ‘을지로 어닝 그린’이에요. 모든 어닝이 초록은 아니지만, 정말 많은 어닝이 초록을 품고 있습니다. 해가 쨍쨍한 오후 한 시의 을지로 골목을 걸어가다보면, 어닝들의 초록 그림자들이 마치 투명한 초록 나무 사이를 걷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한국에 내한했던 어느 헐리우드 배우가, 녹색 방수페인트로 온통 칠해진 주택가의 모습을 SNS에 찍어올리고 “한국의 로맨틱함”을 부러워했던 웃지 못할 일화가 불현듯 떠오릅니다. 실현할 수 없는 꿈처럼 지붕을 뒤덮은 녹색들, 을지로의 어닝에도 바로 그런 꿈들이 내려앉아있는 것은 아닐까요.
녹색의 계절이 물러가는 가운데 지붕들보다 낮은 곳에서 초록의 기운을 더해주는 어닝들, 이번 주의 을지의. 색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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