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을지로 4가에서 구 국도극장 맞은편에 각종 전자제품 취급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들을 고요하게 품고 있는 대림상가 건물이 보입니다. 종로의 세운상가와 함께 전자제품 도,소매로 오랜 명성을 지닌 곳으로, 요즘도 가전제품, 국내/외 고급 오디오, 아케이드, 노래방 기기 등을 도매가로 구입할 수 있는 곳입니다.
이 오래된 상가의 역사를 보려면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이 부지는 당시 너비 50m, 길이 1㎞의 소개공지대였는데 소개공지대는 전쟁 중 발생한 화재가 주변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비워 놓는 공간입니다. 광복 이후 한국전쟁 등을 거치며 이 공터는 점차 판자촌으로 슬럼화 되었습니다.

1970년대 초 세운상가군 일원
세운상가 프로젝트는 이 부지를 대상으로 하는 당시 국내 최대의 건축 프로젝트였고 건축가 김수근은 이 건물에 건축 이상을 적극 반영했습니다. 지상은 차도와 주차장으로만 구성하고, 2~4층을 상가로 구성한 뒤 건물 8개 동의 3층 레벨이 모두 보행로로 연결되게끔 설계하여 차도와 보행로의 완벽한 분리를 추구하였고 상가의 옥상이자 주거 부분이 시작하는 지상 5층에는 인공대지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는 모더니즘 건축의 아버지인 프랑스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이상은 현실에 제대로 구현되지 않았는데 지상 3층 공중보행로는 8개 동이 모두 이어지지 못하고 중간에 단절 되었습니다. 현대·대림·풍전·신풍·삼원·삼풍 등 6개 기업과 아세아상가번영회, 청계상가주식회사까지 총 8개 사업체가 8개 건물을 각각 시공하고 분양하며 8개 건물 3층을 모두 잇는다는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1층도 자동차 전용 공간으로 조성되지 않고 상가가 들어섰으며, 인공대지와 아트리움 계획도 변경되었다고 합니다.
이 세운 상가 프로젝트는 70년대 당시 최대 규모, 최고급, 최신식 아파트로 선망의 대상이자 유행의 중심이었지만 신축 효과가 꺼지며 점차 도시의 애물단지로 전락했습니다. 상권의 중심은 명동으로 옮겨갔고, 강남 개발이 이뤄지며 부동산의 중심도 강남으로 옮겨 갔습니다. 쇠락을 거듭하던 대림상가는 2014년부터 진행된 ‘다시 세운’ 도시 재생과 힙지로(힙+을지로) 유행을 타고 최근엔 젊은층이 찾는 명소로 부활했는데 대림상가 3층 데크를 따라 챔프커피, 해피클럽, 브라운컬렉션, 호랑이 등 카페가 활발한 영업을 이어가고 있고 금지옥엽, 이평, 서점다다, 아몬드 스튜디오, 어보브 스튜디오, 여성을 위한 열린기술랩 등 많은 ‘예술기능공간’들이 구석구석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대림상가를 방문할 때 우리를 가장 먼저 반겨주는 파사드의 외벽은 긴 시간동안 여러 번의 보수와 재도장을 거쳐 지금의 색을 가졌을 것입니다. 특별하진 않지만 다시 페인트 칠을 하기 전까지 볼 수 있을 대림상가의 외투, 대림 컬러 팔레트가 이번 주 을지의.색 입니다.





대림상가 ⓒ바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