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 큐레이션 | 중심잡지 x 김상규 조주리
들어가는 말
이번 주에는 을지로에서 전시 <루트 메탈리카 : 철의 시간, 역설의 장소>를 준비 중이신 김상규 교수님과 조주리 큐레이터님을 만나보았습니다! 김상규 교수님은 프로젝트의 전체 자문을, 조주리 큐레이터님은 실질적인 전시 기획을 진행 중에 있으신데요.
을지로 골목에 가지는 시간성은 무엇이고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전시 <루트 메탈리카>에서는 예술가와 기술자가 만나는 작업들을 통해 을지로의 시간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지 풀어내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전시를 계획하고 있는지, 같이 한번 들어볼까요?


김상규, 조주리 ⓒ오창동
안녕하세요. 오늘은 을지예술센터에서 전시 <루트 메탈리카 : 철의 시간, 역설의 장소(이하 메탈리카)>를 준비하고 계신 두 분, 서울과학기술대의 김상규 교수님과 조주리 큐레이터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메탈리카>는 을지로 일대에서 창작되었던 예술 작품이 예술계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살펴보고, 이를 통해 예술과 기술의 교차점들을 조명하는 전시로 기획되고 있는데요.
연구와 전시를 함께 진행하면서 김상규 교수님은 자문을, 조주리 큐레이터님은 실질적인 전시 기획을 맡아서 한창 준비해주고 계십니다. 먼저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두 분의 자기소개를 먼저 부탁드리겠습니다.
👨🦱김상규 : 안녕하세요, 김상규입니다. 저는 원래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의자 디자인을 하는 일부터 시작했어요. 의자는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진 아이템이기도 하고, 누구나 늘 곁에 두는 것이기 때문에 매력적으로 느껴졌거든요.
그렇게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또 전시기획에도 매력을 느꼈는데, 예술의전당에 디자인 미술관이 만들어지면서 본격적으로 디자인 전시와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여러 기관 등을 거쳐 지금은 학교에 있는 상태인데요.
많은 일들을 거쳐왔지만, 그럼에도 디자인을 놓은 적은 없는 것 같아요. 디자인과 디자인의 여러 얼굴들을 소개하는 일, 실제로 디자인의 결과물을 만드는 일, 전시를 만들거나 책을 쓰는 일들은 모두 디자인을 소개하는 것이죠.
최근에는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만드는 행위는 어릴 때부터 누구나 좋아하는 것인데, 십여 년 전부터 ‘제작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어요. 제작자 운동 같은 것을 보면 ‘만드는 것’이 단순히 개인의 취미가 아니고, 여러 생태계 속에서 운동의 차원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이것이 지금 우리가 포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사회적인 문제들을 대안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하나의 줄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을지로는 빼놓을 수 없는 주제입니다. 저 스스로도 을지로를 자주 이용하는 사용자로서, 지금까지는 을지로 변화의 모습들을 주로 지켜보는 입장이었거든요. 그런데 좋은 프로젝트를 통해 멋진 분들과 함께 할 수 있게 되면서, 제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같이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조주리 : 교수님께서 전공 이야기를 하셔서 저도 거기서부터 시작을 해보자면, (웃음) 저는 기본적으로 사회과학도였어요. 이십 대 전반에는 서양미술사에 관심을 가졌었는데, 그때를 떠올려보면 실제로 지금 하는 일과는 또 조금 차이가 있는 것 같네요. 이십 대와 삼십 대를 거치면서 미술을 중심에 둔 다양한 기획 서비스를 하는 프리랜서 큐레이터로 자리를 잡게 된 것 같습니다.
전시는 저에게 있어 프로페셔널하게 기획하고 연출하는 업무이기도 하지만, 제가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것들을 잘 표출할 수 있는 하나의 플랫폼이기도 해요. 저는 전시를 통해 잊혀졌던 작업을 발굴하기도 하고, 상황에 맞추어 중장기, 혹은 단기 연구를 진행하기도 하거든요.
이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플랫폼이 전시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전시를 계속해서 해나가는 것 같아요. 전시라는 것은 글도 있어야 하고, 시각적인 결과물도 있어야 하고, 일반적인 학문 생태계에서 사용되지 않는 어법으로 뭔가를 보여주는 새로운 지식 생산의 토대이기도 하거든요. 이런 전시들을 계속 해오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전시 기획자가 되었습니다. (웃음)
시각예술 분야에서 일을 해온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면, 을지로는 그 가운데 굉장히 밀접하게 있었던 것 같아요. 저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들은 작가분들인데, 을지로는 작가들의 창작이 이루어지는 주요한 무대이기도 하고요.

왼쪽부터 조주리, 고대웅, 조형빈, 김상규 ⓒ오창동
을지로의 이야기들
을지로라는 주제로 조금 더 들어가보겠습니다. 대로를 통해 지나가면서 보는 을지로는 저에게 참 기묘한 곳이었어요. 시청 쪽에는 엄청나게 커다란 오피스 빌딩들이 서 있는데, 을지로 3가 쪽으로 들어오면서 어느 순간 스카이라인이 확 바뀌죠. 그리고 그 뒤에는, 지금 저희가 있는 곳과 같은 도심 제조업 지구가 숨겨져 있고요. 이 공간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보고 계시는지요?
👨🦱김상규 :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재료와 가공 등을 찾을 수 있는 인프라를 찾아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을지로를 다녀야만 했던 것 같아요. 어느 골목에 무엇이 있고, 어떤 제작을 위해서는 어디로 가야하는지 머릿속에 맵핑을 수 년 씩 했거든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을지로의 자력이 몸에 배었던 것 같습니다. 86년, 87년 당시는 학생운동이 한창이던 때라, 을지로에 물건을 사러 왔다가 시위대에 휩쓸려서 경찰에게 쫓기는 경험도 많았었어요. 그러다보니 을지로는 저에게 굉장한 긴장감이 있는 공간으로 다가왔죠.
목숨 걸고 아크릴을 사고, 목숨 걸고 동판을 샀던 기억들이 있습니다. (웃음) 지금의 을지로와는 조금 다르지만, 제조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정치적인 공간이기도 했던 을지로를 겹쳐서 경험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 다음으로 을지로에 대해서 느꼈던 것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것들과 굉장히 다른 모습들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했어요. 길가의 상점들은 사실 크게 달라보이지 않지만, 안쪽 골목으로 들어오면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지거든요.
작은 공장에서 일하고 계시는 분들은 작업복도 전혀 달라요. ‘빠우 치는 곳’에 가 보면, 일 하시는 분이 머리부터 발 끝까지 빠우에서 나오는 가루들로 덮힌 채로 일을 하고 계시죠. 발에서 얼굴까지 온통 은색으로 뒤덮여있는데, 하루 종일 일을 해야 하니까 그냥 그대로 하시는 거예요.
조그마한 목업이나 프로토타입을 섬세하게 도장하기 위해 찾아가는 ‘후끼집’에 들어가보면, 페인트가 어찌나 많이 칠해졌는지 벽과 바닥이 만나는 모서리가 둥글게 되어있어요. 수십 년 동안 일하면서 덧칠된 흔적이거든요. 그렇게 바깥에서는 절대로 보기 힘든, 그런 광경을 가진 공간이 바로 을지로였어요.
말씀드린 것처럼 정치적인 공간이기도 했지만, 실제로 이 안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너무나 역동적이고, 동시에 초현실적인 모습들에 대한 기억이 선명합니다. 그런데 끊을 수도 없어요. 계속 제작을 맡기러 와야 하고, 부품도 사야하고, 필요한 것들이 있는 곳이니까요. 그렇게 들락거리던 곳을 지금은 관찰하는 입장에서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을지로4가 산림동 ⓒ오창동
👩🦰조주리 : 저는 스무 살에 처음 서울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일종의 외부자적인 시선으로 을지로를 소비했던 것 같아요. 이 골목에 들어와 본 것은 불과 10년 전이거든요. 그랬다가 미술과 관련된 일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면서 이곳을 자세히 보기 시작한 것 같아요.
기관에서 전시를 만들 때에는 업체를 정해서 기물을 제작하기 마련인데, 적은 예산을 가지고 모든 것을 직접 프로덕션하는 일을 주로 맡다 보니 을지로를 직접 와야만 했어요. 아크릴을 맞추러 오고, 테이블을 사이즈에 맞추어 제작하고, 어쩌면 작가분들이 이곳의 기술자들과 관계맺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웃음)
일상적인 기물과 다르게 맞춤으로 제작이 가능하고, 가격도 저렴해서 청계천, 세운상가 등을 정말 많이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면서 해외에서 초청한 아티스트들에게 투어를 시켜주기도 했고요. 이런 데가 없다고 다들 너무 좋아하니까요.
작년 여름에 낙원악기상가의 전시 공간인 d/p에서 헐리우드 배우이자 뮤지션인 잭 블랙의 밴드에게 트리뷰트 하는 전시를 했었어요. 전시를 위해 여섯 달 이상 그곳을 오가면서 도시의 늙어가는 모습을 목격했던 것 같아요. 그곳에 실버영화관이 있어서 노인 분들을 많이 볼 수 있었죠. 그러면서 이 지역을 세대론적인 입장에서 처음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넓게 보면 을지로의 사장님들이 바로 저희 부모님 세대들일 텐데요. 우리 윗 세대들이 청춘이던 70년대와 80년대는 이 도시에 골조가 들어차고, 매일 같이 돈이 벌리던 시기였고, 그 다음 세대인 우리들은 그분들께 용돈을 받아서 이 골목의 ‘레트로’ 카페에서 커피를 사마시죠. 이런 화두에 대해서 예민하게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d/p 갤러리에서 전시를 진행하면서 <철(이)의 시간들>이라는 에세이를 썼는데, 바로 아버지들 세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매우 남성적인 시대였던 것 같아요. 을지로 골목에서 ‘메탈리카’라는 전시 제목을 짓게 된 것도, 굉장히 시끄럽고, 헤비하고, 둔탁하고, 여성을 배제한 남성적인 형질의 시대로 느껴지거든요. 과연 그분들의 시간은 어땠을까,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에 대해서 아주 최근 고민해보게 되었습니다.

조주리 ⓒ오창동
을지로에 질문 던지기
최근 을지로는 문화적으로 많이 소비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단순히 ‘힙한 곳’으로 소비되는 것을 넘어서서, 진짜 이 지역이 어떤 곳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수십 년 동안 철을 썰어오신 분들이 만들어낸 물건들, 도구들을 조명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지 말이죠. 이 공간에 우리는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을까요?
👨🦱김상규 : 을지로 뿐만 아니라, 사실 대도시 중심에는 전통적인 산업 생산시설이 자리하게 마련입니다. 이것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전체 산업의 구조가 바뀌고, 지리적으로도 도시 외곽으로 밀려나거나 제 3세계 국가와 같이 아예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면서 쇠락을 겪거든요.
그런데 도심에는 이런 것들이 여전히 필요해요. 특히나 한국처럼 시간을 여유롭게 주지 않는 곳에서는 수준 이상의 퀄리티의 작업을 즉시 받아볼 수 있는 곳이 필요하죠. 문래동, 성수동 같은 준공업지역들도 바로 그런 맥락의 공간들입니다.
하지만 부동산적인 가치로 보았을 때에는 가장 탐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저평가되어 있는 토지들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개발하고자 하는 힘들이 있죠. 물론 아직 남아서 돌아가고 있는 지역의 산업자산들이 있기 때문에 쉽게 무너지지는 않고, 이런 갈등들 사이에 예술가들이 들어가게 됩니다.
지역을 위해 진행되는 프로젝트들을 보면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모습들이 보이기도 합니다. 외부인들이 청사진을 미리 그려놓고 선정주의나 낭만주의로 접근을 하는데, 그러면 여기에서 계속 생존을 위해서 자리를 지켰던 사람들과는 괴리가 생기는 거죠.
특히 을지로는 서울의 가장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격전이 더 많이 일어나는 공간이에요. 그 가운데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나, 이게 항상 고민이 되죠. 아마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은 다 가지고 있는 고민일 거예요.
그래서 이곳에 계시는 분들, 장인들에 대해서 연구가 되어야할 것 같습니다. 갑자기 ‘명장’이라고 부른다든지, 이런 지나친 미화 때문에 성수동은 오히려 확 무너졌거든요. 이분들이 생존을 위해서 살았던 삶을 조명하고, 자리를 지킨 것만으로 그 가치를 인정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곳의 기술이 최첨단의 그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이분들이 떠나면 사라지는 기술이 될 가능성이 있거든요. 그래서 이분들의 기술들, 개인적인 삶들이 어떤 식으로든 잘 남겨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미화해서 박제를 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무시하고 다 밀어버려서도 안 되고, 실체를 존중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상규 ⓒ오창동
👩🦰조주리 : 을지로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땅이면서 상징적인 곳이에요. 최근 들어서는 여기에 여러 가지 이미지들이 추가되어 레이어가 많이 얽혀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1, 2년 사이에 을지로에서 만나는 동시대의 청년 세대들을 보면 복잡한 생각이 듭니다.
‘힙스터’의 성지가 되었기 때문에 문화사적으로도 굉장히 의미가 있는데, 그런 문화 공간들이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기간도 매우 짧았죠. 더불어 출판사와 독립서점, 공예 및 디자인 스튜디오, 전시공간들이 형성되는 속도가 다른 지역과 비교가 안 될 정도입니다.
이런 흐름 안에서 한편으로 을지로의 장소성을 낭만화하거나 노동의 모습을 콘텐츠화하는 상업적인 제스처들이 생겨나기도 했죠. 이런 것들을 보면 또 다른 국면으로 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비평적으로 볼만한 여지가 매우 많은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을지로의 시각 문화와 도시 보존에 관한 기사들과 논문들이 지난 몇 년간 여러 매체들을 통해서 광범위하게 생산되고 있는데, 이 많은 자료들이 객관적,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이 많은 콘텐츠들이 어떤 기준과 주체의 관점에 따라 배열, 축적될 수 있을지는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관심사 중에 하나입니다.
👨🦱김상규 : 을지로는 단순히 을지로 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청계천과 충무로까지 수십 가지의 산업이 백화점처럼 몰려있거든요. 골짜기에 물이 모이듯 모여서 각종 동식물이 공존하고 있는 형태여서, 단순히 이것을 물리적으로 어디로 옮기기는 힘듭니다.
부분적으로 떼어내면 전체가 와해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런 이야깃거리들이나 지금 인터뷰하고 있는 이 공간과 같은 자원들을 다 잃어버리게 됩니다. 공예나 디자인, 건축하는 분들의 궤적을 쫓아보면 종로, 청계천, 을지로를 하루 종일 돌아다니게 되어있어요. 짧은 구간에 굉장히 다양하게 전문화된 업종들이 몰려있는 거죠.

n/a 갤러리, <뉴물전> ⓒ오창동
그러면 지금 준비하고 계시는 전시 <메탈리카> 이야기를 하면서 마무리를 해볼까 합니다.
두 분이 <메탈리카>를 통해서 전달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김상규 : 지금 을지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위에서 조망하는 건 힘들 것 같았어요. 굉장히 복잡한 욕망들이 얽혀있는 가운데, 하나의 작은 연대를 할 수 있는 끈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순히 재미있게 보는 전시가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던 고민의 실타래를 풀어낼 수 있는 하나의 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조주리 : 현재 일곱 분의 작가들과 함께 준비 중인 전시 <메탈리카>는 을지로 제작문화와 동시대 미술작업의 연계성을 조명하는 연구단의 조사과정을 직접적으로 소개하지는 않지만, 작품 선정과정에서부터 그러한 연구 의제가 어느 정도 반영되었습니다.
두 가지를 연결해 보는 것이 관객들에게도, 저나 작가들에게도 좋은 구조라고 생각했어요. 을지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흥미로워 할 수 있는 전시 자체의 서사와 시각적 완결성을 만드는 것이 요즘 집중하고 있는 목표입니다.
전시의 부제인 “철의 시간, 역설의 공간”(Iron Times, Ironic Places)의 의미를 좀 더 설득력 있게 전달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다만,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 모두가 을지로에 대한 정서적 친밀감과 제작상의 연결점을 갖고 있지만 작품에 있어서는 좀 더 자유롭게 접근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전통적인 메탈 조각이나 추상적인 설치 작업은 사실 그 자체로 구체적 장소성이나 사회적 함의를 드러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미술적인 결과물들로만 전시를 구성하기 어려워보였고, 을지로를 중심으로 한 액티비스트들의 활동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도 이번 전시의 당위는 아니었어요. 전시는 공간 속에서 작품을 경유하여 지각되는 현상학적 경험이나 설치 과정상의 우연이 개입되니까요.
그래서 다양한 작업들이 놓인 공간과 장소 사이를 이동하면서 일관된 심상의 흐름으로 연결되면 좋겠다는 방향을 세웠어요. 개별 작품의 조형과 서사보다는‘을지로의 금속성’을 은유하는 메탈릭 사운드, 단련되고 마모된 촉각성, 온도와 질감 같은 것들아 뭉쳐진 경험의 총체라면 좋겠지요. 골목의 공간과 시간의 굴절, 사람 존재와 사물의 기척들.
이런 것들이 소리와 분위기, 뭉툭한 덩어리와 정교하게 세공된 기물, 철의 단면과 무게감이 남긴 자취와 패턴 같은 다양한 물성과 시각적 표정으로 다가갈 수 있게요. 큰 그림을 제외하고는 세부적인 시나리오를 바꾸고 있기 때문에 어떤 결과가 될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김상규 : 저는 도시의 어떤 공간이 올라갔다가 궤멸하는 것을 여러 번 관찰했습니다. 그런데 항상 그 가운데에 미술이 있더라고요. 을지로는 지금 이미지로 소비되고 있고 장소만 빌려쓰고 있다는 느낌이 강한데, 이러한 전시와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사연과 이유를 보여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공간이 가지고 있는 시간의 퇴적들은 분명 좋은 토양이 될 수 있거든요.
짧은 시간에 준비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메탈리카>가 을지로가 가지고 있는 시간들을 감각으로 어떻게 풀어낼지 기대가 됩니다. 함께 진행되고 있는 연구도 결과물이 궁금하고요. 그럼 인터뷰는 여기까지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상규 ⓒ오창동

조주리 ⓒ오창동

ⓒ오창동
👨🦱김상규(큐레이터) 대학과 대학원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뒤,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 큐레이터로 근무했고 현재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디자인학과 교수로 있다. 《드록 디자인》, 《신화 없는 탄생, 한국 디자인 1910~1960》, 《모호이너지의 새로운 시각》 《잠금해제》 등의 전시를 기획했으며 저서로 《의자의 재발견》, 《디자인과 도덕》 등이 있다.
👩🦰조주리(큐레이터) 동시대 미술과 시각문화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전시기획과 예술연구를 병행해 가고 있다. 주요 주제전으로 《2의 공화국》(2013),《리서치, 리:리서치》(2016),《동백꽃 밀푀유》(2017),《베틀, 배틀》(토탈미술관, 2018),《끈질기게, 끈질긴》(2019),《화이트 랩소디》(2020), 《기획전》(2020)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