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지리적 중심 을지로, 모세혈관처럼 펼쳐진 골목엔 경성의 원형을 상상하게 하는 공간들이 남아 있다. 나이 든 골목과 건물은 공장과 노포가 가득하다. 골목의 외견만 보고 상상하기 힘들 수 있겠지만, 을지로는 2010년대 중반부터 시각예술계에서 중요한 곳 중 하나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도심 골목 곳곳에 예술공간들이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을지로의 예술공간들은 보통 3층 이상에 자리 잡고 있다. 그들은 도시가 시대에 맞춰 갖춰온 원형에 녹아들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밖과는 전혀 다른 공간이 펼쳐진다. 작업실, 전시관, 카페, 바 등 형식은 다양하지만 그 안에서 예술은 저마다의 형태로 기능하며 경계 없이 존속하고 있다. 각각의 지향에 맞춰 저마다의 색을 피우며, 예술실험의 장으로서 역할을 한다.
을지로는 오랜 시간 예술가들에게 창작의 기반을 제공하는 장소였었다. 대형시장들에서 재료를 구매하고, 제조단지에서 전자, 철, 인쇄, 쇠공 등의 기술자들과 함께 창작해왔다. 제조단지 골목에 ‘학생작품’이라 쓰인 간판을 통해 숙련되지 않은 예술가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자연히 을지로엔 많은 예술가가 왕래했다. 외부인은 알 수 없을 골목 구석구석에 자신만의 작업실을 만들었다. 2010년대 중반부터 을지로 3가엔 〈호텔수선화〉로 대표되는 을지로 3가 작업실을 겸한 카페, 펌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을지로 4가엔 2015년부터 서울시 중구청이 〈을지로 디자인 예술 프로젝트〉를 운영하면서 예술가들이 터를 잡고 활동하기 시작했다. 2017년경 이후 신생 전시공간들 등장해 작품을 선보이는 장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포스터나 작은 소품을 판매하는 곳들도 생겨났다. 이렇게 한층 씩 쌓여가는 예술공간들의 수와 영역이 다양해 지면서 시각예술 공간의 층위가 다양해졌다. 젊은 예술가들이 을지로를 기반으로 성장하고 실험하는 장의 형성되었다.
오늘날 대중, 특히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젊은 층들에게 예술은 향유의 대상이긴 하지만 소비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 때문에 예술을 업으로 삼는 이들은 생존을 위해 자구책을 찾았다. 창작, 전시, 공연을 하면서 예술로 공간을 채워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무드는 음료와 음식에 담겨 소비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오래된 도심, 예술이 만든 공간은 SNS를 타고 도시에 새로운 문화의 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소비되면서 생존을 담보 받은 젊은 예술은 성장할 수 있었고,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시간이 쌓여 을지로 일대엔 전시공간, 창작공간, 아트숍, 카페가 예술 생태계를 구축하게 되었다. 순환기처럼 연결된 공간들은 도시를 하나의 미술관으로 만들었다.
구슬은 꿰어야 보배이고, 이름을 불렀을 때 비로소 존재하게 되는 것처럼 도심 속 보호색을 띠고 있던 예술공간들을 거대한 미술관으로 경험 할 수 있도록 하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을지로 일대 45개 예술 공간들은 〈을지예술센터〉와 함께 2021년 05월 20일 수요일부터 06월 06일 토요일 까지 《예술기능공간》展을 개최할 예정이다. 각 공간들은 오픈 스튜디오를 열어 작가의 작업실을 개방하기도 하며, 전시와 공연을 통해 예술관람의 장을 선보일 예정이다. 일부 카페 기능을 담은 공간들은 관람 중 쉬어 갈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고, 아트상품을 판매하는 공간들을 미술관 아트숍의 기능을 할 예정이다.
을지로 3가역 부터 4가역 까지 이어진 대로를 중심으로 실핏줄처럼 뻗어진 골목길 속 아는 사람만 알았고, 특정한 팬덤이 모여들었던 예술공간들은 《예술기능공간》展을 통해 거대한 미술관으로 현신할 예정이다. 도시 문화를 향유 하는 관람객들은 《예술기능공간》展에서 소개하는 권역에 따라 ‘창작의 현장’, ‘전시장’, 포스터·소품을 파는 ‘아트숍’, ‘카페’를 유랑하며 예술에 흠뻑 빠져드는 기회를 제공 받는다.

예술기능공간, Google map, 을지예술센터 제공
서로는 현대 예술의 회랑인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이있고, 동쪽으로는 디자인의 표상인 ‘DDP’가 있는 을지로, 그 중심에서 펼쳐지는 젊은 예술가들의 생존과 성장이 만든 거대한 미술관을 방문해 보길 바란다.
일시: 2021.05.26 ~ 06.06
장소: 을지로 일대 예술공간
주최: 서울시, 서울시 중구청
주관: 중구문화재단, 을지예술센터
문의: 02-6956-3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