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의 사건’과 매체로서의 전시 | 박가희


들어가는 말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전시들이 우리의 곁을 스쳐지나가는 것을 봅니다. 이 다양한 전시들은 저마다 다른 주제를 가지고 각기 다른 이야기들을 하고 있죠. 하지만 전시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전시 자체에 집중한다면 우리는 전시에서 어떤 것들을 포착할 수 있을까요?


박가희 큐레이터는 전시를 하나의 매체로 보고, 그것이 무언가를 전달하는 방식에 집중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전시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전시가 촉발시키는 ‘앎의 사건(event of knowledge)’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죠.


단순히 어떤 작가의 어떤 작품이 전시장에 놓여있는지를 보기보다, 전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어떤 논의들이 만들어졌고 그것이 관객에게 전이되는 과정에 주목했을 때, 전시가 제시하는 ‘질문’을 들을 수 있다고 박가희 큐레이터는 이야기합니다. 어떤 이야기들이 있었는지, 함께 보실까요?



왼쪽부터 몰라, 릳, 박가희 ⓒ청두




매체로서의 전시, 기획자의 일


안녕하세요. 오늘은 박가희 큐레이터님을 모시고 이야기 나누어 보겠습니다. 먼저 간단히 자기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전시를 만들거나, 프로그램이나 연구를 기획하고 있는 박가희라고 합니다. 자기소개와 관련된 이야기는 뒤에서 조금 더 하도록 할게요.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먼저 어떤 일들을 해오셨는지를 여쭤보고 싶은데요. 처음에는 어떻게 일을 시작하게 되셨는지요?


저는 학부에서 미술을 전공하지는 않았는데, 우연히 영국에 기반을 두고 있는 아트엔젤(Artangel)이라는 프로젝트를 알게 되었어요. 그곳에서 진행했던 여러 가지 프로젝트 중에 제레미 델러(Jeremy Deller)나 프란시스 알리스(Francis Alys) 같은 작가들의 작업이 있었는데요.


그런 작업들을 알게 되면서 미술이라는 것이 어떤 미적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개인의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굉장히 철학적이면서 한편으로는 경험적인 것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현대미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것이 사람들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하나의 언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인사미술공간이나 당시의 대안공간 풀 같은 곳에서 진행했던 프로그램들을 기웃거리게 되었고, 미술이 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들에 일종의 환상을 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현대미술 이론을 전공하고 일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처음 일하신 것이 서울시립미술관이었나요?


아뇨. 처음에는 아르코미술관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처음부터 기관 큐레이터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고,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곳에 지원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 절 유일하게 뽑아준 곳이 인사미술공간이었고요. (웃음)


그런데 워낙에 인사미술공간에 대한 일종의 동경이 있었고, 실제로 일하면서 지금까지도 인연을 맺고 있는 좋은 기획자와 작가분들을 만나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조직 자체에 구조적인 경직 같은 것이 없는 곳이어서 일하는 첫 경험으로 좋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나서 바로 서울시립미술관으로 오게 되었어요. 2018년 초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 있었고, 그 해 부산비엔날레에서 협력 큐레이터로 일을 했었고요. 2019년에는 소속된 곳 없이 제가 하고 싶었던 프로젝트들을 했어요. 그리고 드 아펠(De Appel)에서 큐레토리얼 리서치 펠로우로 3개월 정도 네덜란드에 있으면서 책도 많이 보고, 이런 저런 것들을 많이 보면서 개인적으로 많이 채워지는 시간들을 보냈던 것 같아요.


굉장히 의미있는 시간들이었겠네요. 그럼 다시 돌아와서, 처음에 미뤄뒀던 자기 소개에 대한 부분으로 돌아가 볼까요?


네. 사소한 부분일수도 있을 텐데요. 일종의 관습처럼 느껴지며 불편한 점이 있어서 언젠가 소개,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일 등에 대해 한번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기획자가 스스로 자신을 소개할 때, 혹은 누군가가 기획자를 지칭할 때, 보통 그 기획자의 소속된 곳을 말하거나 소속된 곳이 없을 경우에 ‘독립 큐레이터’라고 칭하잖아요. 제 경우에는 항상 ‘기획자’ 혹은 ‘큐레이터’라고 정리해서 보내면 꼭 당시에 제가 소속된 기관을 부연하여 적는다든지 혹은 없을 경우 ‘독립’이라고 수정되는 경험을 몇 차례 했어요. 아마 많은 기획자분들도 비슷한 경험이 있을 거예요.


저는 스스로를 ‘독립 큐레이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제가 ‘독립’이 지닌 태도나 함의를 갖고 무언가를 해봤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단순히 소속이 있으면 소속을 쓰고, 없으면 ‘독립 큐레이터’로 정체화하는 것이 섬세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결국 한 사람이 기획자로서의 태도와 정체성을 보여주는 지칭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지난 번에 <중심잡지>에서 다룬 양지윤 큐레이터의 인터뷰에서, 본인을 “대안공간 루프의 디렉터이지만 독립 큐레이터로 생각한다”고 말하신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자신을 정체화하는 것은 소속의 여부보다는, 주어진 조건으로써 어떤 태도를 가지고 일을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2014년도에 전시를 할 때 같이 작업을 했던 작가를 통해 알게 된 문장이 있어요. “모든 힘은 형태로 진화한다.” 이 문장은 예술의 형식 자체가 시대의 조건에 반응한 결과물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인데요.


다시 생각해보면, 창작 활동에 있어서 존재하는 수많은 상황과 조건들이 때로는 제약이 되기도 하는데, 그 조건과 환경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을 창작의 한 부분으로 치환해서 만들어내는 것이 기획자의 몫이라는 것이죠.


한편으로는 이제는 독립, 혹은 소속 큐레이터라고 말하는 것이 우스운 상황이 된 것 같아요. 그 경계가 굉장히 모호해졌다고 생각해요. 활동의 반경이 많이 교차하니까요. 요지는 자신을 스스로 어떤 기획자라고 정체화하는가,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기획자 앞에 붙는 수식어보다 저 기획자가 어떤 관심을 가지고 있고 어떤 전시를 만드는지를 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박가희 큐레이터님께서 스스로를 ‘독립 큐레이터'로 지칭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역사적으로 ‘독립 큐레이터'라는 개념이 존재한다고 하면, 저는 그것이 기관이 제공해줄 수 있는 여러 가지 것들을 제반부터 다 마련, 조직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단지 소속이 없다고 해서 ‘독립 큐레이터’라고 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특히 우리나라처럼 공적 기금에 기대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은 상황에서, 소속이 없이 기금을 받아서 활동하는 것을 저는 ‘독립 큐레이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공적 기금을 쓴다는 것 자체가 그 사람에게 공적 책임이 주어지는 것인데, 단순히 내가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고 해서 그 책임감으로부터 벗어나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결국에는 모든 과정과 조건들을 스스로 조직할 수 있는 사람들이 ‘독립 큐레이터’라고 생각해요. 단지 재원의 문제만은 아닐 텐데요. 전체 생태계 안에서 공공기관이 하지 못하는 무엇을 기획하고 조직할 수 있는 역할을 지닌 것이 또한 ‘독립 큐레이터’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독립 혹은 소속 기획자의 어떤 구분을 이야기하기보다는 각자 주어진 조건을 끌어안고 무언가를 조직할 수 있는가에 관심이 더 가는 것 같아요. 다소 장황하게 앞서 이야기했지만 제 소개로 돌아오면, 제 경우에는 전시 자체를 하나의 매체로 사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 같아요.


저를 소개할 때 “전시를 하나의 매체로 간주하고, ‘앎의 사건(event of knowledge)’을 촉발할 수 있는 전시의 형태나 구조에 관심이 많다”고 쓰고 있어요. 그 ‘앎의 사건'을 만드는 하나의 장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이야기한 모든 전시들에서 이런 태도와 방법을 가지고 전시를 만들어왔다고 생각합니다.



©청두



변화하는 세계와 위치짓기


서울시립미술관 이후에 부산비엔날레에서도 계셨는데요.


부산비엔날레에서는 ‘협력 큐레이터’라는 포지션으로 일을 했고요. 큰 틀의 내용은 총감독이었던 크리스티나 리쿠페로(Cristina Ricupero)와 큐레이터 외르그 하이저(Jorg Heiser)가 잡아둔 상태에서 제가 지역의 맥락과 이를 조금 더 확장하여 아시아라는 맥락에서 감독이 설정한 주제를 어떻게 볼 수 있는지 작가를 추천하고 커미션하는 역할이었습니다.


비엔날레의 내용은 이미 많은 자료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내용을 반복해서 말하기 보다는, 미술생태계 내에서 비엔날레가 갖는 역할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하는데요.


해마다 반복되지만 당시에도 ‘비엔날레가 더 이상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고, 대규모의 전시로서 작동한다’와 같은 비평 등이 있었어요. 물론 저 역시도 동의하는 바였지만, 바퀴 안에서 함께 굴러가고 있을 때는 일단 완수를 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고, 비평적 거리두기가 잘 안 되잖아요.


비엔날레가 담론을 만들지 못하면서도 계속 굴러갈 수밖에 없었던 건 글로벌 아트씬 안에서 계속해서 이동을 만들어내기 때문이었는데요. 그런데 코로나 19가 터지면서, 남아있던 단 하나가 작동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우리가 과연 비엔날레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는가, 이 한계가 극명하게 드러났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순환하는 이동의 구조도 막힌 지금, 지속되는 비엔날레를 방문하면서 양가적인 감정이 들더라고요. 오랜만에 이 정도의 프로덕션에서 오랜 시간 공을 들인 작가들의 작업을 보는 것이 너무 좋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의 속도를 전혀 따라오지 못하는 비엔날레의 구조나 유통 방식 자체가 구태하다고 느껴졌어요.


이 방식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는 건 우리 모두가 일상에서 느끼고 있는데, 이 현실과 비엔날레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새로운 모델이 어떤 것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답을 아는 사람이 없는 상태지만, 그렇다고 코로나 이후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만을 낙관하면서 기다리는 것밖에 없는가, 이런 생각도 들고요. 이 기회를 통해서 무언가 다른 것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비엔날레라는 형식이나 규모에 대한 의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관에 대한 이야기로 다시 연결해보면, 소속을 가진 상태에서 일하는 것도 끊임없는 갈등과 싸움의 맥락에 있다고 할 수 있을 텐데요. 그 틀을 해체하는 것, 혹은 내 언어를 새롭게 조직하는 것들 사이에서 기획자로서 어떻게 위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해체하는 것과 새롭게 조직하는 것이 같이 가야한다고 생각해요. 조건이라는 것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재미가 없으니까, 이걸 흩뜨릴 수 있는 방식을 항상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그 경계를 흩뜨리면서 자기 언어를 만들어야 다시 ‘조직될’ 수 있다고 믿는 편이고요. 그렇다고 제가 뭔가 엄청난 것을 해체하고 이런 건 아닌데…


만약 처음부터 제가 소속없이 10년 동안 일을 하다가 기관에서 일을 하게 되었으면 많은 부분이 힘들었을 것 같기도 해요. 무언가를 만들어내서 움직이게 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겨우 한 걸음 나아가는 구조를 애초에 기본값으로 알고 있었으니까 크게 부침이 없는 것 같아요.


또, 더 중요한 부분은 결국 기관의 큰 방향성과 추구하는 가치가 제가 동의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구조적인 부침이 아주 힘들다고 느끼진 않았던 것 같았고요. 또 제 나름대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같은 걸 만들어 갔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마음이 맞는 동료들과 함께 스터디를 조직해서 연구를 하거나, <스스로 조직하기>와 같은 책을 번역하면서 생각을 나누는 것 같은 방식이요.



박가희 ©청두



큐레토리얼the curatorial, 그리고 전시의 수행성


말씀하신 것과 같이 매체로서의 전시, 그리고 그 안에서 조건을 기반으로 만들어내는 돌파구들을 계속해서 고민해오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올해 기획하신 ‘전시미분사’ 역시도 같은 맥락에 있을 것 같은데요. ‘전시미분사’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전시미분사’는 ⟪SeMA 전시 아카이브 1988-2016: 읽기, 쓰기, 말하기⟫를 통해 전시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서 시작되었어요. ‘전시미분사’ 프로젝트를 기획하면서 연구를 같이 할 분들을 초대했고, 현시원 씨와 장지한 씨를 일종의 에디토리얼 보드로 초대해서 1년 정도 함께 ⟪당신은 나의 태양⟫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단순히 과거의 전시를 복각하여 역사화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전시를 경유하여 지금 현재에 어떤 논의를 이어갈 수 있을지를 고민했어요.


방법적으로는 과거의 전시를 아카이브로 모으는 일이 하나가 있었고, 장지한 씨와 현시원 씨에게 커미션을 해서 쓴 글, 그리고 권태현, 김인혁 작가를 초대해서 ‘전시미분사’의 연구의 맥락에서 과거의 전시에 관한 기억, 경험하지 못한 전시를 기억해 내는 일종의 가이드가 될 수 있는 비디오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놓고 보면 ‘전시미분사’의 활동은 웹을 베이스로 한 일종의 저널이자 아카이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전시미분사’에서는 고민하셨던 부분들이 어떻게 드러났나요?


⟪SeMA 전시 아카이브 1988-2016: 읽기, 쓰기, 말하기⟫는 1988년부터 2016년까지 미술관에서 있었던 전시를 통해서 기관의 제도 역사를 살펴보는 전시였어요. 그 전시를 하면서, 한 기관의 역사를 살펴볼 때 전시가 토큰이 돼서 그 기관의 역할의 변화나 제도사 같은 것들을 볼 수 있는 변곡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시가 당대를 축약한 하나의 사전이 될 수 있다는 거죠.


작가에 대한 작가론처럼, 전시도 하나의 텍스트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고, 그것을 만든 큐레이터가 가지고 있는 일관된 실천과 태도로써의 방법들을 살펴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전시미분사’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전시미분사’의 에디토리얼에도 제가 썼는데, 크게는 전시를 사고하는 방식과 그것을 만드는 것, 그리고 그것을 읽는 차원에서 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제가 제일 거슬렸던 것 중에 하나가 어떤 전시를 표현할 때 ‘재미없다' 혹은 ‘재미있다'고 간단하게 말하는 방식인데요. 전시에 들어간 공력이나 마음 씀씀이 같은 것들을 퉁쳐서 이야기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제는 인스타그램 태깅으로만 연결되는 전시 리뷰들, 크리티컬한 이야기는 없고 인적 네트워킹으로만 순환되는 전시가 회자되는 방식들, 이런 것들도 문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결국 아직도 전시라는 것을 주제에 따라 상응하는 작가들을 불러모으는, 옛날 방식의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결국 전시를 만드는 데에는 구조적인 측면이 강하게 존재하거든요.


작품을 어떻게 볼 것인가도 있지만, 내가 본 작품을 어떤 방식으로 물질화하는지에 대한 구조적인 측면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이 쉽게 간과되곤 해요. 기획자의 어떤 실천의 과정에서 전시가 나오게 되었는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어떤 것들이 수반되었는지, 전시 기간 동안 촉발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인지, 이런 유기적인 방식의 독해가 필요하거든요.


또 사람들이 근과거의 역사를 너무 모르는 채 지금의 미술이 흘러간다는 생각이 들어서 과거의 전시를 통해 현재의 무엇을 말할 수 있는지 이야기해보고 싶었어요. 올해 ‘전시미분사’에서 주제로 정한 전시인 ⟪당신은 나의 태양⟫을 선택한 이유도, 이 전시의 구조나 전시가 담고 있는 시간이 ‘전시미분사’가 역사를 다루고자 하는 방식과 같았기 때문이에요.


⟪당신은 나의 태양⟫이 당시에 어떤 역사적인 위상을 가지고 있었는지, 혹은 전시의 내용이 어땠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전시가 만들어졌던 방식과 지금 할 수 있는 말이 겹쳐진다고 생각했어요. 와중에 어려운 것은 사람들이 너무 콘텐츠적으로 사고해서, 구조가 직조되는 방식을 보는 게 아니라 스토리 라인과 내용에 집중하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들이었는데요.


중요한 것은 내용 그 자체보다 전시의 구조, ‘앎의 사건'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실천이고, 그래야 전이의 과정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전시미분사’는 이러한 총체적인 질문들을 통해 시작되었습니다.



©청두



그렇다면 전시란 과연 무엇일까요? 혹은 전시가 하나의 매체로서 기능할 수 있는 방향성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전시라는 매체에는 수행적인 속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제 경험이 저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수행적인 속성을 통해 관객에게 전이되고 그 사람에게 질문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그 순간이 바로 ‘앎의 사건'입니다.


‘앎의 사건'이라는 단어 자체는 제가 만들어낸 것은 아니고, 영국의 미술비평가이자 학자인 이릿 로고프(Irit Rogoff)가 비아트리체 본 마스마르크(Beatrice von Bismarck)와의 대담에서 언급했었던 개념이에요. 제 경우에는 전시를 만드는 행위, 혹은 모든 총체적인 큐레토리얼 안에서 전시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행위들이 다 ‘앎의 사건'이라는 바운더리를 전제하고 이루어지는 활동이라고 생각해요.


전시라는 것 자체가 일정한 시공간에 주어진 매체이고, 굉장히 비가시적이지만 다양한 사유와 경험이 촉발될 수 있는 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여기서 촉발된 사유는 직접 접촉하고 대면할 수 없는 상태일 경우가 많지만, 전시 안에서는 시차를 두고 이것이 교차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큐레토리얼의 영역 안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여러 가지 경험에서 중요한 것이 인식의 전이나 경험적 사유가 촉발될 수 있는 상황을 만들 수 있는, 수행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수행성이라는 것은 기획자나 창작자들이 무엇인가를 만들 때 진행했던 과정에 대한 관심,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촉발되는 것 자체를 ‘앎'이라고 말할 수 있고, 바로 그 ‘앎'이 전이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 전시나 프로그램이 좋은 기획이라고 생각해요.


저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수행성을 발현하는 것, 기획자의 차원을 떠나 인식적, 경험적인 차원에서의 ‘앎의 사건'이 촉발되는 순간을 만드는 것에 있습니다. 전시를 통해 ‘앎’을 나누는 시간의 공동체, 공동의 기억이 발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전시를 매체로 바라보았을 때, 어떤 질문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고민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전시를 통해 ‘앎의 사건'들이 드러나는 지점들이 어떤 것일지도 궁금해지고요. 이제 좀 정리를 해볼까 하는데요. 지금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를 만들고 계신데, 현재 준비하고 계시는 전시에 대해서도 간단히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사실 저번 주에 <사랑을 위한 준비운동> 전시를 겸한 공공 프로그램이 끝났어요. 올해 서울시립미술관의 기관의제는 트랜스미디어, 전시의제는 ‘배움'을 주제로 하고 있는데요. 이 ‘배움’이라는 맥락 안에서 저는 ‘탈학습’에 대해 생각을 하는 중이에요.


<사랑을 위한 준비운동>, 연말에 있을 <호주 현대미술 전시>, 그리고 <러닝 스테이션>이라는 전시와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 세 전시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배움’이에요. 배움을 해석하는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탈학습을 반복적으로 사유했을 때 호주라는 지역을 어떻게 읽을 수 있을지(<호주 현대미술 전시>), 또 혐오나 차별, 구분짓기와 같은 사회적 현상을 뛰어넘는 의도적 실천으로써의 배움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지(<사랑을 위한 준비운동>) 고민했죠.


<러닝 스테이션>의 경우 상호성에 기반한 배움이 어떤 방식으로 실천될 수 있을지 고민하는 프로그램으로, 세 개의 전시가 각각 탈학습의 대상을 어떻게 보고 구조화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프로그램들이 될 예정입니다.


네, 앞으로도 준비할 전시들을 앞두고 많이 바쁘실 것 같습니다. ‘전시미분사’를 비롯한 기획들에서 가지고 계셨던 고민들이 어떻게 전시를 통해 풀어날지도 궁금하고요. 다가올 전시들을 기대하면서, 인터뷰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박가희 ©청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