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지역, 세계화의 조건들을 넘나드는 사유와 기획 | 임종은


들어가는 말


에드워드 사이드는 세상을 인식하는 주체로서의 서양이 그 대상으로 삼는 ‘동양’을 인식하는 과정의 총체를 ‘오리엔탈리즘’이라고 한 바 있습니다. 오리엔탈리즘의 맥락 아래에서 동양은 단지 비-서양일뿐인 것이죠.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동양’이 비-서양으로 파악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나 같은 ‘아시아’의 지형 안에서도 수많은 다양성이 존재하고, 차별되는 사회문화적 맥락들이 수도 없이 많이 있음을 경험하고 있죠. 그렇다면 현대미술의 경우는 어떨까요?


이번 주의 ‘큐레이션.쉽’에서는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임종은 큐레이터를 만나보았습니다. 일본과 중국, 인도네시아를 오가며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임종은 큐레이터는 단수가 아닌 복수의 아시아가 흥미롭다고 이야기합니다.


현대미술을 통해 아시아의 면모를 들여다보는 것은 어째서 중요할까요? 국제적 이동성의 세계 안에서 이동하는 신자유주의 흐름은 어떻게 파악될 수 있을까요? 임종은 큐레이터의 작업과 기획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함께 보시죠!



왼쪽부터 릳, 몰라, 임종은 ©청두



기획을 만들어온 과정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오늘은 임종은 큐레이터님을 모시고 영등포시장역 지하 2층에 위치한 ‘라운지 사이’라는 공간에서 인터뷰를 하게 되었습니다.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독립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는 임종은이라고 합니다. 주요 관심사는 한국과 아시아의 현대미술을 중심으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안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과정들을 살피는 연구활동을 하고자 하는 기획자입니다.


먼저, 처음 전시기획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요?


저는 미학을 전공했고, 첫 직장으로 광주 비엔날레 퍼포먼스 코디네이터를 하게 되었어요. 그 후에 청주 비엔날레에서 코디네이터를 했고, 다음으로는 대안공간 루프에 큐레이터로 있었죠. 당시에는 신보슬님이 치프로 있었고, 저와 양지윤님까지 세 명이 같이 일을 했어요.


그 다음에는 2007년에 쌈지 스페이스에서 큐레이터로서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하고 전시를 열게 되었어요. 거기에서 레지던시를 하면서 독립기획자로 전시를 꾸려나갈 수 있는 과정이 시작되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2007년에 《뻥화론 연구》라는 전시를 하게 되었어요. 물론 쌈지라는 기관의 큰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독립큐레이터로서의 작업, 리서치를 할 수 있는 과정들이 가능했죠. 《뻥화론 연구》 전시는 19세기에 임종팔이라는 사람의 책이 현재에 발견되어 연구된 내용을 발표한다는 구조의 전시였어요.


이 전시는 우리나라에서 ‘화론’이라는 것이 조선시대까지도 중국의 화론에 의지를 했고, 현재 ‘미술’이라는 것이 일본을 통해 서구에서 유입되고 번역된 상황,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화 혹은 동양화라는 것 속에서 생기게 되는 여러 가지 의문들로 출발했습니다.


2005년, 2006년 당시에는 아시아 미술 광풍이 불었던 때여서, 한국 미술이 그런 분위기에 편승하기도 했고, 또 한국화 자체가 이전까지의 전통의 계승과는 다른 방식으로 전통을 바라보는 작품들이 등장하게 됐죠.


‘뻥화론’의 뻥은 중국 발음으로, 모방할 방(倣)으로 전통을 기대기도 하고, 모방하기도 한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뻥(거짓)이기도 한 ‘만들어진 전통’을 가리키는 것이죠. 이런 맥락에서 당시에 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이형구, 최우람, 이용백, 전준호, 김학량, 김범, 노순택, 김을 등 많은 작가님들을 인터뷰하고 리서치를 했어요.


그렇게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서 1년 동안 연구도 하고 책도 만들고 전시도 마무리를 할 수 있었어요. 그 전시 이후에는 박사과정으로 입학을 했고, 공부를 하면서 여러 공공미술 프로젝트들에 참여하기도 했어요.


박사과정을 마칠 때쯤에 저에게 관심사가 되었던 주제는 후기식민주의와 세계화 시대의 한국 미술의 위치에 대한 것이었어요. 한국화, 동양화에 대한 논쟁은 《뻥화론 연구》와도 연결되죠. 우리에게 ‘동양화’라는 상황을 준 건 일본이거든요. ‘동양화’ 혹은 한국화라는 등의 용어 문제뿐만 아니라 미술을 번역어로 준 일본에 가서 연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도쿄 원더 사이트(Tokyo Wonder Site)라는 기관이 있는데, 당시에는 아오야마 국제대학 근처에 레지던시를 운영하고 있었어요. 2010년도에 박사를 수료하고나서 도쿄 원더 사이트 아오야마 레지던시를 가서 제가 궁금했던 것들도 연구하고 일본 현대미술도 보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것을 통해 일본 현대미술과 제가 궁금했던 것들을 리서치할 수 있었죠.


그 후에 한국에 다시 돌아와서 2011년도에 노마딕레지던시(중국 윈난)를 수행하고, 2012년도에 《표류기》라는 전시를 만들었어요. 중국에서 우리가 생각했던 중국과는 다른 경험을 함으로써 심상의 아시아를 몸으로 느끼고 싶었습니다.


그 뒤로는 지금까지 매년 전시를 하려고 노력하면서 제가 생각하는 근대, 후기식민주의, 아시아, 세계화 속에서의 현대미술이나 아시아 미술과 네트워크, 이런 주제들을 계속 실천해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기관에 있을 때도 있고 나와서 활동할 때도 있지만, 계속 연구하고, 전시하고, 전시 여건을 만드는 것들은 기관의 큐레이터들과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또 기관에 계시는 분들이 기관의 방향에 맞추어 전시를 만들 듯이 저도 제가 생각한 것들을 하나씩 제 여건과 시간에 맞춰서 하는 거죠.


2016년도 즈음에는 문래동 문래예술공장에 운영위원으로도 활동했습니다. 문래예술공장은 거버넌스 형태로 구성되어 운영되었는데, 거기에도 참여했었죠. 사실 그 동네에 살고 있어서 지역에서 예술 향유자로서 계속 관심을 갖고, 지역 주민으로서 개입하고자 했던 활동이었습니다.



왼쪽부터 릳, 임종은, 몰라 ©청두



아시아에 대한 사유, 지역에 대한 고민들


정말 정신없이 바쁜 길을 걸어오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아시아적인 것’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계신 것 같은데요. 아시아의 현대미술은 어떤 부분에서 흥미로운 지점들을 가지고 있을까요?


관념 속의 아시아를 설정하고 ‘아시아적인 것을 상상하고 소비하게 만드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하나의 커다란 ‘아시아적’인 특징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비슷한 역사적인 배경을 가진)아시아의 여러 면면을 보고 싶어서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아시아의 현대미술’ 역시도 어떤 ‘하나의 미술’이 아니라는 거죠.


우리는 흔히 미술이라는 것을 자율적이고 보편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도 화론이 있었다’고 이야기하고, 우리도 이론이 있고 역사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말하자면 ‘뻥화론’에서 이야기하는 방식이죠. 미술은 단수가 아닌 복수라는 거예요.


하지만 동시에 제 사고방식에도 근대교육 이후의 사고방식을 통해 우리 미술을 바라보는 관점이 들어가 있을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동아시아 중심으로 아시아를 바라보는 것이기도 하죠.


그런데 동아시아를 넘어서 다른 아시아 문화권에 가서 그곳의 미술을 살펴보면, 제가 생각하고 있던 ‘미술은 보편적이고 자율적인 것’이라는 생각을 감각적으로 해체하고 정리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어요. 그래서 좋았던 거죠.


사회 구조가 다르니까 미술 구조도 다르게 나타납니다. 미술이 단수일 수 없는 거죠. 그런 하나하나의 사건들이 모여서 제가 하고 싶은 전시나 실천들을 만들어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시아가 저에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지정학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곳이라 계속 가보고 연구하고 싶고, 작가들에게도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청두



한국을 넘어서서 다양한 아시아의 모습과 미술의 현장들을 넘나드시는 동시에, 또 말씀하신 것처럼 문래와 영등포 지역에서도 연을 가지고 작업을 하기도 하셨는데요. 영등포, 이 지역과는 어떤 관계를 맺고 계신지요?


관계라고 한다면, 먼저 제가 살고 있는 고향이고요. 영등포구민이면서, 동시에 전문가로서 문래예술공장 운영위원이기도 했습니다. 사적인 경험들 외에도 문래창작촌 자체에 연구자로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꼭 미술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도시의 생태, 도시의 변화의 측면에서도 흥미로운 곳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작년에 계기가 되어서 이곳 ‘라운지 사이’에서 전시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또 문화 향유자로서의 관심이었던 것 같아요. 또 큐레이터들이 모두 고민하는, 어떻게 미술의 미적이고 지적인 부분을 일상 공간에서 사람들과 함께 나눌 것인가, 이런 고민도 있었죠. 마침 제가 여기에 살고 있었고, 지역에 기여하고자 하는 마음과 큐레이터로서의 실천, 이런 것들이 함께 작용했던 것 같아요.


팬데믹 속에서도 이곳 라운지 사이는 문을 닫은 적이 없었어요. 모두가 힘든 상황에서 여기는 카페이자 전시장으로 계속 작동을 했고, 그래서 지역 주민들에게 계속 노출이 되면서 저는 여기서 어떻게 무엇을 나눌 수 있을까, 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라운지 사이는 5호선 영등포시장역이라는 지하철역 안에 있고, ‘진짜 숲’이 없는 공간이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도시 숲에 대한 이야기를 예술로 말하고 싶었고, 작년에 진행했던 전시 제목도 《다음역은 사이 숲》이 되었어요. 식생이 있을 수 없는 곳에서 예술로 도시 숲을 만들어보자는 것이죠.


이 다음의 전시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라는 제목으로, 날씨가 없는 이곳 지하의 공간에서 날씨를 어떻게 나눠볼 수 있을까 하는 전시예요. 일상에서 결핍된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퍼져나가는 사유들, 기후문제라는 사회적 문제까지 접근하는 작가님도 있고 지하에 어떻게 햇빛을 넣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작가님도 있어요.


지역과 관련해서 2018년도에는 문래창작촌에 대한 책자를 만드는 작업을 하시기도 했습니다. 어떤 내용이었나요?


책 〈창작촌 문래〉는 문래창작촌의 생태계를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책으로 만든 작업이었어요. 어쩌면 을지예술센터에서 지금 갖고 있는 관심사와 비슷한 맥락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미술계 자체가 생태계잖아요. 문래예술촌이라고 했을 때 그것도 일종의 마을이자 생태계를 지칭하죠. 또 영등포구와 영등포문화재단도 문래창작촌의 생태계와 관계가 있어요.


그래서 작가뿐만 아니라 재단 분들이나, 담당 주무관 공무원들까지도 인터뷰를 해서 문래예술공장에 대해 갖고 있는 다양한 입장을 보여주고자 했어요. 어떤 역할을 하고 있고, 어떤 사업을 하시는지, 또 창작촌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를 말이죠.


여기서 작업을 하시다가 식당으로 전업을 하신 분도 있었어요. 문래동은 사람들이 먹고 마시기 위해 찾아오는 곳이기도 하죠. 작업을 하지만 커뮤니티 활동을 안 하시는 분이나 문래라는 지역을 의식하며 이곳과 관련해서 활동하신 분들을 되도록 다양하게 만나려고 노력했어요.


책을 만드실 때 이 작업을 통해 궁극적으로 보고 싶으셨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혹은 어떤 것들이 나타나게 되었나요?


책의 결론 부분을 조금 읽어볼게요. “당연히 이 책에서 많은 것을 다 담을 수는 없다. 또한 그러한 의도도 없다. 필자와 연결되고 공유하는 기억이 있거나 하는 사적인 출발점으로 시작하여 서로 소개를 받거나 하는 등의 관계를 형성하면서 이야기가 이어나게 될 것이다. 우리들의 단편적인 기억 중 하나가 남아서 미래에게 말을 건네고 우리를 이끌고 나아가기를 희망해 본다.


이때쯤 문래동의 젠트리피케이션이 심화가 되면서, 계속 개발에 대해 발표가 나오던 때였어요. 다들 이곳이 굉장히 많이 변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문래동은 많이 변했거든요. 그래서 첫 번째로는 당시의 ‘시간’을 남기고 싶었어요. 같은 사건을 가지고도 다 다른 경험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런 이야기들을 담고 싶었어요.


또 여기서 작업하는 작가들의 활동도 당연히 담고 싶었고요. 또 공간 413과 같은 공간의 이야기도 담았고, 영등포구청 주무관님의 이야기도 재미있었어요. 매년 사업이 어떻게 운영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들도 물어보았거든요. 되도록이면 다양한 결을 보여주고 당시의 상황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왼쪽부터 임종은, 릳 ©청두



세계화의 조건을 고민하는 기획들


을지로 역시도 작가들이 작업을 하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최근 몇 년 사이에 전시를 위한 작은 공간들이 많이 생겨난 곳이기도 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저희가 참고하고 배울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 더 최근의 작업들 이야기를 해볼까 하는데요. 2019년에 만드셨던 《궁극의 거래》는 어떤 내용의 전시였는지요?


《궁극의 거래》는 세계화라는 조건 아래서 사물들이 신자유주의와 경제적인 논리에 따라 돌아다니게 된다는 것에 주목한 전시입니다. ‘이동성’이라는 개념에 초점을 맞춰서, 사람이 움직이면서 생기는 사건들이나 물건이 움직이면서 생기는 사건들을 보여주면서, 예술의 자리에서 지금의 세계화 안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들을 다루고자 했어요.


인도네시아 노동자가 대만으로 가서 겪게 된 일이라든지, 우리나라 소주병이 일본 오키나와에 가서 전통공예로 다시 만들어진 일 같은 것들이 그런 것이죠. 류큐 전통공예는 일본에 미군 기지가 들어왔을 때 만들어진 것인데, 한국 소주병이 일본의 전통공예 방식에 의해 일본의 전통을 입고 다시 한국 전시장에 오게 되었어요..


또 파키스탄 소금이 중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오거나 나갈 때 예술 작품이 되는데, 그 과정에서 재료인 ‘소금’이 식품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다른 증서들이 필요해지거든요. 또 중국 작가가 싱가포르 난양 대학의 갤러리로부터 동남아시아에 대한 작품 의뢰를 받고, 근대 국가의 문장, 영토들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면서 작가가 가진 ‘왜 싱가포르는 중국인에게 동남아시아를 요구하는가?’라는 질문 같은 것들이 떠오르는 거죠.


이 중국 작가는 유명한 작가인데 한국에 들어올 때에는 서류 몇장에 의해 아주 플랫해져 버리고 말아요. 이런 다양한 상황들이 신자유주의 안에서, 이동이 자유로운 상황에서 우리가 보아야할 것들, 지금 우리의 모습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전시였습니다.


앞서 해오셨던 작업을 전체적으로 말씀해주실 때 큐레이터로서 진행하시는 ‘연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는데, 작가님들 역시도 작업에 치밀한 연구가 동반된다는 느낌이 듭니다.


기획의도에 충분히 공감을 해주셔야 하니까요. 작가님들을 리서치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새 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면 더 그렇죠.


기존에 있는 작업으로 하는 전시도 의미가 있을 수 있어요. 기획 의도와 맞아 떨어지는 작품이 있다면 그 작품으로 하면 제일 좋겠죠. 저와 함께 해주셨던 작가님들이 너무 훌륭하신 분들이라, 제가 예상한 것보다 항상 더 멋있는 걸 제안해주세요. 자기 작품 안에서 더 풍부하게 기획의 아이디어를 넓혀주시는 것 같습니다.



왼쪽부터 릳, 임종은, 몰라 ©청두



2019년 상하이 종이비엔날레에서는 한국관 예술감독을 맡으셨습니다. 이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졌고 어떤 것들을 보여주고 싶으셨나요?


종이비엔날레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비엔날레로, 아트 비엔날레와는 좀 달라요. 비엔날레라는 것 자체가 굉장히 국제화된 미술 형식에 대한 이야기인데, 어떤 지역과 전통에 대한 주제를 다룬다는 것이 흥미롭게 느껴졌어요.


물론 전통적인 종이만 다룬 것은 아니고, 장지아 작가의 경우 4대강의 물을 떠서 그걸 픽셀로 만들어서 산수화를 완성하기도 했어요. 원래는 출력을 인화지에 하는데 이번에는 동양화 종이에 해달라고 해서 족자 형태로 출품했죠.


한솔 작가님은 종이를 세탁기에 돌린 비디오 작업 결과물을 전시하기도 하고, 종이로 가공을 해서 가구를 만든 작품도 있었어요. 종이비엔날레에 출품하기 위해서 디자인 업체에 의뢰해서 종이를 감물로 염색하고 실리콘으로 코팅해서 의자를 만들었죠. 종이의 대안품으로 만든, 일종의 가짜 종이로 만든 작품도 출품했고요.


현대인의 삶과 관련된 작품을 포함하여 다양한 종이의 쓰임들을 보여주고자 했어요. 공예 디자인과 현대미술을 오가면서, 여기에 동양화 작품들도 당연히 들어왔고요. 그렇게 전시 제목이 《종이의 덕》이 되었죠. 종이의 가치, 종이의 쓰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이제 인터뷰를 마무리해볼까 하는데요. 마지막으로 지금 준비하고 계시는 전시에 대해 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전시는 이곳 라운지 사이에서 올려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라는 전시고, 9월에 《설탕과 소금》(아르코우수전시지원)이라는 전시도 준비하고 있어요.


우리나라는 원래 사탕수수 같은 것이 나지 않는 나라인데, 100년 전부터 설탕을 먹기 시작해서 지금은 굉장히 큰 소비국이 되었죠. 또 한국은 제당기술이 좋아서 설탕을 수출하기도 하고요. 설탕과 소금은 필수적인 것이 되어버려서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냅니다. 우리 일상 안에서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이 예술적인 모티브가 되는 거죠.


10월에는 인도네시아의 족자카르타라는 비엔날레가 있어요. 특별전 전시의 큐레이팅을 하게 되어서 정은영 작가님, 장지아 작가님과 전시를 만들어보려고 해요.


한꺼번에 여러 전시들을 준비하시면서 정신없이 바쁘실 것 같습니다. 오늘 인터뷰에서 이야기해주신 ‘동양’과 아시아, 그리고 지역을 넘나드는 이야기들이 굉장히 흥미롭게 와 닿았습니다. 앞으로의 전시들도 매우 기대가 됩니다. 그럼 오늘 인터뷰는 여기까지 마치도록 할까 합니다. 시간내어 인터뷰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임종은 ©청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