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축적되는 공간의 힘 | 오웅진


들어가는 말


이번 주에는 을지로의 전시 공간, 을지로 OF를 운영하고 있는 오웅진님을 만나보았습니다. 2018년 을지로에 만들어진 을지로 OF는 다양한 기획들이 올려지는 공간으로, 그리고 ‘을지로스러운’ 멋을 가진 공간으로 잘 알려져있는데요.


을지로 3가의 골목을 헤집고 들어가다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을지로 OF가 위치하고 있는 경진빌딩을 만나게 됩니다. 정말 이곳이 맞나 싶은 생각으로 5층까지 열심히 계단을 올라가보면, 마침내 보물처럼 숨겨져 있는 을지로 OF를 만나게 되는데요.


3년째 을지로 공간에서 전시 공간으로서의 고민을 이어가고 있는 을지로 OF. 과연 어떤 고민과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지, 을지로 OF를 운영하고 있는 오웅진님의 인터뷰, 함께 보시죠!



을지로 OF 건물 입구 ⓒ오창동




을지로의 공간, 을지로 OF


안녕하세요, 오늘은 공간 ‘을지로 OF’를 운영하고 계시는 오웅진님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전시공간 ‘을지로 OF’를 운영하고 있는 오웅진입니다. 을지로 OF에서는 기획 전시도 하고 있지만 ‘기획자’라는 호칭보다는 그냥 전시 공간 운영자라고 불러주시면 편할 것 같습니다.


원래는 영상과 미디어 쪽에서 일을 했었는데, 을지로에 작업실을 만들고 그것이 전시 공간까지 이어져서 현재는 을지로 OF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을지로 OF는 처음에는 글래머샷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한 한대웅 작가와 둘이서 운영을 하다가, 현재는 다섯 명 정도가 모여서 같이 기획도 하고 운영도 하고 있습니다.


처음 을지로에 을지로 OF를 만드시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처음부터 전시 공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어요. 을지로라는 장소성에 크게 감화됐다거나 하지도 않았고요. 단지 월세가 저렴한데 접근성이 좋아서 자리를 잡게 된 것이거든요.


한대웅 작가는 사진을, 저는 영상을 하고 있으니까 같이 작업실을 만들고 작업하는 공간을 만들자고 이 건물 4층에 들어오게 되었죠. 그런데 건물주 할아버지께서 젊은 친구들이 공간을 빌려서 뭔가 하는 것 같아 보이니까, 5층도 한번 써보지 않겠냐고 하시더라고요.


처음에 5층은 아무도 쓰지 않는 공간이어서 이 빌딩에서 나오는 모든 쓰레기가 다 올라가 있었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화장실도 없는 공간이어서 저희가 공간을 다 만들어야했습니다.


어떤 공간을 만들고 싶으셨나요?


조금 드라이하게 이야기해보면, 인사동 같은 곳에 있는 갤러리들에 대한 안티테제 같은 느낌을 가지고 가고 싶었어요. SNS를 보면 재미있는 작업을 하는 뛰어난 작가들이 이렇게 많은데, 왜 인사동을 가면 항상 자작나무 같은 그림만 걸려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 시차가 너무 멀게 느껴졌어요. 온라인에서 활발하게 작업을 소개하는 작가가 오프라인으로도 자연스럽게 넘어올 수 있는 것. 그런 것을 가능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저희는 소정의 입장료를 받고 있는데, 사실 제법 많은 분들이 방문을 하시지만 전시 진행에 들어가는 비용을 제하면 작가들에게 아티스트피(artist fee)를 거의 드릴 수가 없어요. 물론 저희가 어떤 수익성이나 사업성을 가지고 공간을 만든 것은 아니지만, 그런 측면에서는 공간의 구실을 다 하지 못하는 것 같은 아쉬움도 가지고 있습니다.



을지로 OF 건물 전경 ⓒ오창동



시간이 축적되는 전시 공간


말씀하신 것과 같이 SNS에서도 그렇고, 을지로 OF가 많이 알려진 공간이 되었는데요. 을지로에 다양한 공간들이 생겨났고, 또 생겨나고 있는 중이죠. 을지로 OF를 정확히 어떤 공간이라고 정의하면 좋을까요?


한 마디로 말하면 전시 공간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대안 공간이라는 어감도 잘 맞지 않는 것 같고, 문화예술 공간도 어색한 것 같습니다. 사실 3년 넘게 을지로 OF를 전시 공간으로 꾸리고 있는데, 이것만 해도 너무 힘들더라고요.


공부할 게 너무 많거든요. 전시 공간을 운영함에 있어서 작품이 올 때마다 새로운 공간에 도착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복합 문화 공간이 된다면 저는 개인적으로 너무 버거울 것 같아요.


공간과 관련해서 인터뷰를 몇 번 한 적이 있었는데, 또 한편으로는 ‘갤러리 OF’라고 부르시더라고요.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갤러리 보다는 그냥 ‘전시 공간’이 저희에게 딱 맞는 것 같습니다.


‘갤러리’라는 호칭이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고, 오히려 ‘갤러리’는 작업을 생업으로 가지고 가는 분들에게 다른 측면에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갤러리는 분명한 구매력이 있는 클라이언트들이 갈 수 있는 곳이고, 저희 공간은 상품성이 없어도 다양한 매체들이 올려지고 그것을 보고싶은 분들이 오는 곳이니까요.



왼쪽부터 오웅진, 조형빈 ⓒ오창동



말씀하신 부분에서, 을지로 OF가 가지고 있는 방향성이 보인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기획 전시를 진행하시는 데 있어서 기준 같은 것들이 있을까요?


작가의 작업이 성장해가는 과정 중에 어떤 성장통 같은 시기가 있거든요. 굉장히 아픈 시기가 있어요. 뭘 해도 안 되는 것 같고, 이걸 반드시 해야 내가 다음 스텝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잘 안 되는 거죠.


전시, 그리고 작품이라는 것은 누군가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 그 속성인데, 아무도 이걸 받아 주는 공간들이 없는 때가 있습니다. 내가 이걸 제때에 게워내야 다음 것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럴 때 그런 것들을 게워낼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공간을 운영하시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았던 것이 있을까요?


전시는 모두 기억에 남죠. 공간을 보시면 하시겠지만, 훌륭하고 깔끔한 공간이 아니다보니 작가님들이 피스도 뚫어도 되고 벽에 칠을 해도 되거든요. 공간을 훼손할까봐 망설이는 작가님이 계시면 제가 직접 해머를 들고 뚫어드리기도 해요. 박았던 못 자국, 칠했던 벽 색깔들이 그래서 다 남아있죠.


을지로 OF는 공간이 조금 특이하고 을지로라는 곳에 위치해 있기도 하지만, 제가 이런 대단한 공간을 가지고 있다는 것 때문에 뜬금없이 이런 인터뷰할 자격을 얻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해요. 사실 발휘할 수 있는 능력과 영향은 다 을지로 OF의 퍼포먼스거든요.


제가 이 공간을 40년 동안 짊어지고 온 것도 아니고, 공간은 그냥 거기 버티고 있었을 뿐이고 저희는 무임승차를 한 거죠. 그래서 오히려 을지로 OF에 대해서 제가 이러이러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주제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을지로 OF 입구 ⓒ오창동



을지로의 장소성과 OF


을지로 OF는 말 그대로 을지로에 있기 때문에, 최근 을지로가 변화하는 모습들을 계속 지켜봐오셨을 것 같습니다. 을지로 OF를 만들고 운영해오신 이래로, 을지로는 어떻게 변화해 왔나요?


을지로 OF를 처음 연 것이 2018년 상반기였는데, 을지로에 생겨난 전시 공간들이 다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조용조용하게 작업실을 운영하시다가 작업을 보여줄 수 있는 쇼룸으로 발전한 경우들도 있고요. 물론 더 오래된 곳들도 있죠.


공간들이 생겨난 것과 별개로 오가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도 신기해요. 한편으로는 그렇게 ‘힙지로’를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이 양날의 검 같다는 생각도 하고요. 실제로 이 지역은 철공을 비롯한 다양한 산업이 돌아가는 곳인데, 방문하는 분들이 시보리가 뭐고 밀링이 뭔지 알고 오시는 것은 아니니까요.


을지로가 가지고 있는 풍경들은 분명 서울에 얼마 남지 않은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곳은 관광단지가 아니고 실제 생업이 돌아가는 곳이다보니, 외형적으로 보기에 신기하고 오컬트하다고 이미지로 소비하는 것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요.


예술 역시도 동네에 있는 분들에게 무언가 ‘문지른다’는 생각도 들고요. 문지르면 흡수가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계속 문지르는 액션은 보이고 있거든요.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을지로 OF ⓒ오창동


을지로라는 장소에서 작용하고 있는 다양한 시간, 다양한 힘들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생각들이 드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을지로가 ‘힙지로’가 되기 전에도, 이 동네에 원래 작업실이 있던 분들은 있었어요. 그런 분들은 공간이 어떻게 변해도, 꾸준히 알아서 작업을 하실 분들이거든요.


굳이 말하자면, 이곳을 아무리 멋있게 차려놔도 이곳이 저희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 단지 구성원으로서 참여할 수 있는 것 정도죠. 을지로는 재개발 이슈로 복잡한 곳입니다만, 그것을 어떻게 바꾼다기 보다는 그냥 여기 사람이 뚝딱거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해요.


그런 측면에서는 지역과 연계해서 활동하는 작가님들도 유의미한 일을 하고 계신 거죠. 어떤 것을 당위적으로 찬성하거나 반대하기 보다, 이곳을 재개발해서 주상복합 건물을 올리기 전에 여기에 어떤 공간과 사람들이 있었는지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지금 하고 계신 전시(11월 13일 현재) 이야기를 하면서 마무리를 해볼까 하는데요.


11월 15일까지 《움직이고 싶지 않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이라는 전시를 진행 중 입니다. 원래 무용을 전공하신 이선민님이 예술감독으로 처음 기획을 한 전시인데요.


무용도 그렇고 연극도 그렇고, 무대에서 실시간으로 관람하는 예술의 경우 스크린을 통해서 보는 것보다 몸이 훨씬 더 ‘벌거벗겨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여성 무용수의 육체가 예술계를 관통하는 것이 얼마나 엄혹한지, 그런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몸에 가해지는 규율들, 타투도 불가능하고 몸에 트러블이 있는 것도 오류처럼 받아들여지고, 살이 찌거나 나이가 드는 몸의 변형들이 여성의 몸에 더 가혹하게 작용하는 상황에 대해 공감하는 여섯 명의 작가님들이 같이 하는 전시입니다.


을지로 OF 공간이 가지고 있는 힘도 멋지지만, 전시에서 작품들이 저마다 하고 있는 이야기들도 몹시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앞으로 을지로 OF에서 펼쳐질 다양하고 재미있는 기획들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움직이고 싶지 않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 전시 전경 ⓒ오창동


ⓒ오창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