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기술서적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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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상가와 청계상가를 잇는 데크를 걷다 보면 간판으로 만들어진 의자를 볼 수 있다. 「대림음식백화점」과 「세운기술서적」 간판으로 만들어진 벤치이다. 2017년 고대웅작가는 간판개선사업으로 버려지는 간판 중 일부를 수집하였고, 다음 해 PRAG STUDIO와 함께 이 의자를 만들었다. 그렇게 ‘대림음식백화점’이 의자가 되었다. 3년 후에는 세운상가의 외국 기술 서적들을 수입해 판매했던 기술의 보고 ‘세운기술서적’이 문을 닫게 되면서 그 간판을 가지고 다시 의자를 만들게 되었다.


대림음식백화점의자, 고대웅&PRAG, 2018




50여 년 동안 세운상가를 지켜온 '세운기술서적'. 이곳은 대한민국이 IT 강국이 되기까지 그 초석을 닦았던 곳 중 하나입니다. 2평 남짓한 이 작은 서점을 통해 수많은 이들이 외국의 선진 기술을 배울 수 있었고, 서로의 경험과 지식을 나눠 더 큰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시대가 달라지면서 서점이 뿌렸던 씨앗들은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그곳에 담겼던 뜨거운 열정은 사회 곳곳으로 퍼져나가 저마다의 형태로 피어날 수 있었죠.

오랜 시간 책방의 이정표였던 간판은 사람들이 모여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되었습니다. 지난날 서점에서 사람들이 서로 시간을 나누었듯, 세운을 오가는 사람들이 새로운 휴식을 나눌 수 있도록 의자 ‘세운기술서적’이 만들어졌습니다. 또한 이 작품에는 여럿이 앉을 수 있는 의자를 통해 지난날 서점이 만들어왔던 역사를 많은 사람들이 함께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겨있습니다. 세운기술서적, 감사합니다.

- 고대웅 -



세운기술서적의 간판이 알루미늄 프레임을 액자 삼아 50여 년을 버텨왔듯, 은 빛깔의 철제 액자를 만들기 위해 시간이 지나도 부식되지 않고 청소 및 관리가 용이한 스테인리스 스틸(stainless steel)이 소재로 선택되었습니다. 스테인리스 스틸은 을지로의 공장들을 통해 레이저로 재단하고 절곡하고 용접하기 손쉬웠기에, 제작의 편의와 실용성 측면에서 안성맞춤인 소재였습니다.



세운기술서적의자 레이저커팅도면 ⓒ청두



‘스테인리스 스틸’은 ‘스테인리스 강鋼’이라고도 불립니다. 스테인리스는 영문으로 ‘Stain Less’로 표기하는데, 말 그대로 ‘부식이 되지 않는 철’입니다. 때문에 항공기 산업, 주방기기, 면도날에 이르기까지 삶 곳곳에서 많이 쓰이며, 야외에 설치되는 예술품들에도 종종 쓰이곤 합니다.

노래하는 사람, 스텐인리스 스틸, 조나단 브로프스키, 1994,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단단한 철은 강한 힘의 상징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 산화되어 점점 원형을 잃어간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오랜 시간 있어왔습니다. 오래 전에는 표면에 옻을 칠해 산소와 만나는 부분을 최소화하기 위한 시도를 하기도 하였고, 인도에선 철에 인을 많이 넣어 부식에 강하게 만든 철 기둥이 지금도 서 있다고 합니다.


인도, 델리의 철기둥



‘세운기술서적’ 간판 역시 앞으로도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켜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부식되지 않는 스테인레스 스틸로 제작되었습니다. 세운기술서적이 지난 50년 동안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는 씨앗을 뿌렸던 것처럼, 앞으로 50년 동안 이곳을 찾는 이들이 그 역사와 기억을 잊지 않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