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우리가 ‘시각예술’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말 그대로 볼 수 있는 것, 혹은 만질 수 있는 것들로부터 출발했습니다. 말하자면 어떤 ‘물성’을 띠고 있는 것들이 예술로 간주되었었죠.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예술의 범위가 확장되면서, 경험으로서의 예술, 혹은 관계로서의 예술들이 작품으로 등장합니다. 하나의 물질로 규정하기 힘들고, 관객이 어떤 것을 경험할 수 있는지가 작품에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로 자리하는 이러한 비물질 예술들은 놀라운 미적 감각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많은 질문들을 품게끔 하기도 합니다.
비물질 예술 작품들이 모이는 마켓인 《퍼폼》은, 이러한 작품들을 우리가 어떻게 ‘작품화’시켜 받아들이고, 또 판매하거나 구매할 수 있을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데에서 출발했습니다. 《퍼폼》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또 무엇을 추구하는지 김웅현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함께 보실까요?

왼쪽부터 릳, 김웅현, 몰라 ©청두
비물질 예술 장터, 《퍼폼》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오늘은 작가이자 《퍼폼》의 기획자이신 김웅현님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먼저 간단하게 자기소개, 그리고 《퍼폼》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네, 안녕하세요. 김웅현이라고 합니다. 저는 주로 영상의 시나리오를 지지체 삼아 파생되는 여러 가지 작업들을 하고 있습니다. 설치나 퍼포먼스 등의 방식으로 작업을 하고 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푸티지(footage) 쓰는 것도 좋아하고, 전시장에서 단순히 물리적인 작업물을 감상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어떤 롤을 맡는 형태의 작업들을 펼치고 있습니다.
동시에 《퍼폼》이라는 비물질 예술 장터를 운영하고 있는 대표이기도 합니다. 《퍼폼》은 시각예술 분야 안에서 형태가 없는 예술 작품으로 지칭되는 여러 작품들을 한 군데 모아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행사입니다.
동시대의 예술 생태계에서 작가들이 만들어내는 작품들에 시장성이라는 것이 있는지 다양한 실험들을 해보고, 또 젊은 작가들의 새로운 작품들을 경험해볼 수 있는 장이 되는 것이 《퍼폼》의 취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퍼폼》은 동시대 예술, 그 중에서도 특히 ‘비물질 예술’을 중심으로 기획된 행사로 알고 있는데요. 오늘 이야기를 통해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있었고 어떤 것들을 만들어 오셨는지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됩니다. 《퍼폼》은 처음에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우선 《퍼폼》의 방향성에 대해서 먼저 짚고 넘어가야할 것 같습니다. 《퍼폼》이 출발하게 된 계기는 생태계의 문제와 크게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특별히 ‘퍼포먼스’라는 어떤 장르에 대한 갈망이 있어서라기보다, 동시대의 또래 작가들이 어떤 직위에 얽매이지 않고 모일 수 있는 플랫폼이 있으면 재미있지 않을까? 이런 각에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퍼폼》을 기획하게 된 최초의 계기는 2015년 있었던《굿-즈》였던 것 같아요. 저도 《굿-즈》에 작가로 참여하기도 했지만, 《굿-즈》 이후에 동시대 미술들이 어떤 물질적인 비주얼을 제시하는 대신 관객이 할 수 있는 경험이나 사건들을 제시하는 경향이 두드러진 것 같았거든요.
2015년 전까지의 대부분의 경험들은 미술관이나 갤러리 안에서 이루어졌고, 신생공간들이 이슈가 되었을 때에는 또 거기에 ‘경험만’ 있다는 것이 아쉬웠어요. 그래서 어떤 접점 같은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럼 어렴풋한 생각만 가지고 있던 와중에, 《굿-즈》가 끝난 연말에 헛헛함을 달래기 위해 이런 ‘경험’만을 전달하는 씬 같은 걸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를 김영수 작가와 나눴어요. 그때 저희가 관심이 있던 건 게임적인 서사를 가지고 있는 작품들이었고, 그래서 퍼포먼스를 주제로 잡아보자고 이야기가 된 거죠.
처음 시작하신 것은 2016년도였죠?
네, 2016년 연말, 한 해의 마지막을 마무리하는 느낌으로 우정국에서 처음 《퍼폼》을 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우연치 않게 색깔이 생겨난 건데, 《퍼폼》을 열기 위한 지원금으로 장터 지원금을 받았어요.
사실 얼핏 생각하면 ‘비물질 예술을 누가 사겠어?’ ‘퍼포먼스를 정말 팔 거야?’라고 비관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데, 오히려 이런 부분이 더 획기적일 수 있을 것 같았던 거죠. 다들 굿즈 가지고 나와서 파는데 저희만 ‘시간’ 같은 이상한 것들을 판다고 하면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그렇게 생긴 첫 번째 색깔이 ‘비물질 예술’을 주제로 삼았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마켓’이라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우정국이라는 공간 때문에 생긴 ‘형태’였죠.
우정국에는 무대로 쓸 수 있는 공간이 1층 한 군데인데, 이 무대를 시간차를 두고 계속 바꿔야 했거든요. 그래서 이제껏 봐왔던 공연들과는 다른 성격이 되어야 했습니다. 무대가 바뀌는 과정 자체를 관객이 모두 볼 수가 있고 또 리허설도 진행을 해야 하다보니까, 시간이 안 맞더라고요. 그래서 차라리 ‘무대를 교체하는 과정’을 작업으로 삼자고 했죠.
괄호가 아예 그 다음에 오는 조익정의 무대를 만들어주는 퍼포먼스를 하고, 조익정의 무대가 완성이 되면 쉬었다가 바로 조익정의 공연이 일어나면서 굉장히 빠른 속도감의 장면이 연출되었어요. 우연히 그렇게 된 건데, 결과적으로는 이런 것들을 통해서 《퍼폼》의 색깔이 만들어진 거죠.

왼쪽부터 김웅현, 몰라, 릳 ©청두
사고, 팔고, 교환하다
말씀하셨던 두 번째, 아마도 가장 중요할 것 같은 특징인 ‘마켓’을 언급하셨는데요. ‘마켓’이라는 개념은 《퍼폼》에서 어떤 의미였나요?
사실 가장 부담스러웠던 게 이 두 번째, ‘마켓’이라는 거였어요. 첫 번째 특징인 ‘비물질 예술’은 저도 그런 작업을 해왔었고, 주위의 작가들과 같이 ‘놀 수 있는’ 작업이니까 재미있을 것 같아 보였는데, 두 번째 해에 다시 마켓으로서 장터 지원금을 받는다는 것, 그리고 우정국이 아니라 다른 플랫폼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점들이 굉장히 많이 고민이 되었습니다.
《퍼폼》에서 하고자 했던 ‘비물질 예술 작품 마켓’이라는 것은, 말하자면 “내가 숨 쉬는 것을 당신이 사야 한다”같은 느낌이에요. 관객에게 쥐어주는 것은 없으면서 동시에 무언가를 팔아야 한다는 부담감 같은 것, 없던 일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상상하기 힘든 부분이잖아요.
그래서 두 번째 《퍼폼》부터는 이 고민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보니 그럼 “왜 마켓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 거죠. 미술 생태계에 관심을 갖고 살펴보니 저와 비슷한 세대, 혹은 동시대의 미술이 소비되는 시장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굉장히 강했어요. 갤러리 외에는 딱히 작업을 사주거나 젊은 작가가 섭외되는 일 자체가 일어나지 않으니까요.
공교롭게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장터 씬들이 많은 젊은 작가들을 소비할 수 있게 해주고 있죠. 또 2회 때 함께 고민했던 것은 전형적인 형태의 퍼포먼스 작업들을 계속 해오셨던 배우나 안무가들의 작업까지도 확장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퍼폼》은 매번 기획자를 바꿔서 진행합니다. 저는 그냥 돈을 쓰는 사람이고요. (웃음) 2회 때 송지현이라는 영화 쪽 작업을 하시던 분이 기획으로 오셔서 퍼포먼스를 강화할 수 있었는데, ‘영상 역시도 비물질 예술이니까 영상 작업도 포함을 시켜야 한다’고 해서 영상 작업들까지도 확장하게 되었죠.
동시에 두 번째 《퍼폼》의 가장 큰 화두는 퍼포먼스를 어떻게 ‘기록’할 수 있는지의 문제였어요. 이 ‘퍼포먼스의 기록’이 미술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건 역사적으로 혹은 이론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죠. 그래서 이런 것들을 다루면서 동시에 마켓의 형태까지 같이 가지고 갈 수 있을 것인가? 이 모든 고민들을 두 번째 《퍼폼》에서 다 하게 되었습니다.
삼청동이 원래 90년대에 굉장히 핫했던 퍼포먼스 씬이었어요. 그래서 아트선재, 아라리오, 호아드, 보안여관을 설득해서 5일짜리 행사를 만들었어요. 내용적으로는 퍼포먼스 작업이 절반, 영상과 시각예술을 베이스로한 작업이 절반, 이렇게 꾸리게 되면서 ‘비물질 예술의 생산, 소비, 교환’이라는 주제를 잡게 되었습니다.
행사에서 티켓팅을 하면서, 티켓팅 이외에 우리가 비물질 예술을 어떤 방식으로 구매할 수 있을까? 즉, ‘소비’할 수 있을까? 나아가서 교환, 배급 같은 것까지 할 수 있을까? 이런 거창한 질문들을 던지게 되었어요.

김웅현 ©청두
상당히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우리가 공연예술(performing arts)라고 부르는, 말 그대로 전형적인 ‘공연들’은 사실 공연 자체를 사고 파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데요. 경험적인 측면이 강조되는 퍼포먼스 아트(performance arts)를 사고, 팔고, 교환하는 마켓을 만드는 일은 굉장히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2회에 이런 많은 고민들을 담아서 행사의 몸집을 키우고 나니까, 오히려 주목을 덜 받게 되는 아이러니가 생겼어요. 원래 첫 해 만들었던 《퍼폼》이 시각예술 안에서 일어났던 건데, 이걸 키우니까 관심있는 분들이 우르르 와서 같이 노는 분위기가 아니라 공식적인 행사 같은 것이 되어서 오히려 관객이 확 줄더라고요.
대신 토크 프로그램들이 많아서 《퍼폼》에 대한 토크를 계속 진행했고, 개념적인 것들이 많이 남게 된 행사가 두 번째 《퍼폼》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퍼폼》은 성과가 표면적으로 보이는 행사가 아니다보니, 그때부터 또 고민이 생겨났어요.
일단 영상 작품의 경우 저희가 5년 동안 진행하면서 한 작품도 팔지 못했거든요. 그러니까 ‘어떻게 퍼포먼스를 살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계속 되고 있어요.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배급권을 사는 것인지, 아니면 공연권 혹은 물리적인 패키지로서 작품을 사는 것인지 다양하게 생각해볼 수 있거든요. 그래서 이 질문, 이 실험은 아직 끝나지 않고 진행 중에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저희는 굉장히 강력하게 《퍼폼》은 ‘마켓’이라는 것을 표방해왔어요. 예를 들어 2017년의 경우, 호아드 갤러리 1층을 아트마켓처럼 펼쳐놓고 상업적인 디자인들을 적용하기도 했었고, 일민미술관으로 넘어왔을 때에도 1층을 비슷한 방식으로 꾸몄거든요.
2019년에는 ‘린킨아웃’이라는 부제가 처음 생겼죠. 이솜이 씨라는 아주 젊은 기획자가 2019년 1월쯤에 공간 ‘퍼폼 플레이스’에서 ‘린킨아웃’이라는 이름으로 작은 행사를 했었는데요. 영상 작품들을 메뉴판으로 만들고, 그걸 보고 관객들이 선택을 하면 1인 테이블에서 작품을 틀어주는 방식이었죠.
이 컨셉을 저랑 같이 짰어요. 그러면서 영상 작업이 비물질이기 때문에 더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부분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가 나왔죠. 영상 작업에 질질 흘러내리는 감각을 더한다거나, 실제로 테이블에 앉아서 그런 것들을 만지면서 볼 수 있게 한다든지 말이죠.
처음에는 굉장히 힘들 것 같았어요. 예산도 없고 디자이너도 없어서 조악하게 만들어야 했거든요. 그런데 6일 행사를 했는데 여기에 몇백 명이 온 거예요. 정말 셀 수 없는 사람들이 와서 연희동 그 골목에 줄을 서서 들어오더라고요. 도대체 이게 뭐지? 싶었어요. ‘유명한 작가라고는 단 한 명도 없고 전시 경력도 없는 사람들이었는데 왜 다들 이걸 보겠다고 몰려왔을까?’
여기서 기획자와 제가 나눈 이야기가 ‘사람들이 경험한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아닐까?’였어요. 그래서 2019년 《퍼폼》을 준비하면서 그 기획자를 메인 디렉터로 섭외를 하게 됐습니다.
그전까지의 《퍼폼》은 항상 라인업 공연이 메인 테마였는데, 2019년에는 라인업 공연을 조금 줄이고 린킨아웃을 앞으로 끌어내서 마치 카페처럼 만들어보자고 했어요. 처음에는 비물질 예술이니까 도록도 만들지 말까 했다가 메뉴판이 필요해서 만들게 됐죠.
결과적으로 80명 가까운 작가들이 참여를 했는데 행사가 정말정말 힘들었어요. 작가들을 모두 만나서 세 번 이상 대면 미팅을 하고, 작업을 다 가지고 와서 시뮬레이션을 전부 돌리고 아르바이트생들이 이 시뮬레이션 과정을 완벽하게 숙지해야 했으니까요.
유사 퍼포먼스를 경험하는 것이 이 행사의 주안점이었고, 우리가 옷 가게에 가서 옷을 피팅해보는 것처럼 퍼포먼스도 그런 감각을 주어 보자는 것이었죠. 그런 경험을 통해서 ‘이걸 이렇게 해서 집에서 내가 갖고 놀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 이 행사의 목표였거든요.
예를 들어 박경률 작가는 페인터인데, 본인의 작업을 연성해서 테이블 안에 구조를 가득 채우는 오브제를 만드셨어요. 그런데 이걸 작가 본인이 세팅하는데 40분이 걸리는 거예요. 처음에 아르바이트생을 시켜봤더니 두 시간이 걸리더라고요. 그래서 아예 아르바이트생 한 분을 정해놓고 이것만 연습하시라고, 결국 나중에 그 아르바이트생은 20분만에 작품을 해내는 지경에 이르렀죠.
너무 재미있어 보이는데요. 테이블에 와서 앉으면 작품이 시작되는 건가요?
네, 일민미술관 안에 메뉴판을 보는 공간이 따로 마련이 되어있고, 메뉴판을 보고 체크리스트에 작품을 골라놓고 카운터에 가서 결제를 하면 박스로 세팅이 되어있는 작품을 내어줘요. 이걸 들고 서버가 안내하는 테이블로 가면 이제 퍼포먼스가 시작되는 거죠.
그런데 문제는, 저희도 이런 방식을 처음 해보는 거라 관객이 이렇게 많이 올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는 거였어요. 저희가 5일 행사를 하는데 4천 명이 왔더라고요. 테이블은 12개였거든요. 원래는 작품이 80개니까 관객이 10개를 원하든 80개를 원하든 다 보여주는 것이 저희의 원래 의도였는데, 관객이 너무 많이 오니까 “한 작품만 보고 가셔야 합니다.” 이렇게 된 거죠.
일민미술관 계단 밑에까지 줄을 다 서시고 클레임은 계속 들어오고 상황이 정말 최악이었어요. 행사를 뭐 이렇게 만들었냐는 얘기들이 계속 들어오고. 사실 저희는 그런 행사를 만든 게 아니었는데 말이죠. (웃음) 디자인도 너무 잘 나오는 바람에 ‘힙한 전시’로 소문이 났지만 사실 하나도 안 힙했거든요. 작가들은 전부 다크서클 이만큼씩 내려와서 누가 내 작업 보는지 보고있고, 아르바이트생들은 다 울면서 작업 보여주고 있고.
진짜 지옥같았던 행사였는데, 동시에 너무 재미있었던 행사이기도 했어요. 행사가 끝나고 가장 많이 들어온 피드백이, ‘이건 무조건 상설로 가야된다’였어요. 5일 행사로 하니까 사람들이 이렇게 몰릴 수밖에 없었고, 상설이었으면 아예 예약을 받아서 한정된 인원만 볼 수 있을 거라는 거였죠.

왼쪽부터 몰라, 김웅현, 릳 ©청두
비물질 예술을 둘러싼 고민들
말씀만으로도 너무 재미있었을 것 같습니다. 당시의 정신없고 혼란스러운 상황이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요. ‘린킨아웃’이 2019년이었고, 2020년에는 행사를 여는 대신 다른 방식으로 바꾸셨다고 들었는데요.
저렇게 정신없이 행사 마무리를 하면서, 2019년에 저희가 회의를 굉장히 많이 했어요. 회의의 가장 큰 화두는 ‘우리가 행사를 4년이나 해왔는데, 과연 누가, 그리고 무엇이 주목받았나?’였어요. 이제 《퍼폼》은 어디로 가야하는가에 대한 질문이었죠.
저희가 하고 싶었던 것은 사실 “이런 작가들이 있으니까 작가와 작품을 봐주세요”였는데, 예상과 다르게 언론과 피드백들이 《퍼폼》의 시스템, 행사 자체에만 주목을 하는 거예요. 플랫폼으로서 작동을 해야 하는데, 마치 연례행사 같은 것이 되어버리니까 ‘그 안에 누가 있는지 상관없이 플랫폼을 소비하러 간다’가 되어버렸다는 것이죠.
그리고 지원금을 받는 경우 요구되는 어떤 정량적인 성격의 결과물들, 그런 것들로부터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원금을 더 이상 받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행사를 만드는 것을 멈추고, 지금까지 참여했던 작가들의 자료들을 어떻게 앞으로 계속 볼 수 있게 만들 것인지가 2020년의 화두가 되었죠.
사실 이 고민과 결정은 코로나 팬데믹이 터지기 전에 잡았던 방향인데, 마침 환경이 이렇게 변하게 되면서 앞으로 ‘완벽하게 비물질’로 돌아서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비물질’ 예술 행사를 4년 전부터 준비해왔던 것처럼 말이죠. (웃음)
2020년에는 이전과 같은 《퍼폼》행사를 여는 것이 아니라, 아카이브 형태의 웹사이트를 만드셨죠?
네. 이전에도 티켓팅을 위한 웹사이트는 있었지만 2020년에 아예 새롭게 만들게 되었어요. 가독성을 많이 높이고, 실제로 작업의 구매가 일어날 수 있도록 만들었죠. 만약 이 작업 구매하거나 대여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퍼폼》을 경유해서 사갈 수 있도록 한 웹사이트입니다.
웹사이트를 구축하고 2020년에도 사실 행사 아닌 온라인 행사를 하기는 했었어요. 작가들을 섭외해서 직접 대여를 해봤거든요. 우리나라에는 미술 배급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아서 영국의 모델을 참고했는데, 아티스트 피도 제대로 안 주는 상황에서 작품 대여비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이전까지의 《퍼폼》이 일종의 행사, 마켓으로서의 북적북적함이 강조된 느낌이었다면, 플랫폼이 온라인으로 옮겨가면서 좀 더 본질적인 ‘비물질 예술의 구매/판매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더욱 접근한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실제로 “작품을 판다면?”이라는 질문을 작가들에게 하면 작가들조차도 당황합니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대부분 생각하시는 것은 댄스필름 같은 메타 기록들이고, 뭎[Mu:p] 같은 작가들은 본인들의 작업을 파츠로 나누어서 구조로 가격을 나누기도 하죠.
재난미술 프로젝트 작업을 했었던 김정모 작가의 경우 재난 상황을 연출하고 그 상황 안에 들어와서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작업인데요. 이 작품은 재난의 버전을 제한하고 유일한 에디션으로 만드는 조건으로 판매가 될 뻔하기도 했었어요. 이런 식으로 작가들, 혹은 저희가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 자체가 의미가 컸죠.
공연예술 쪽에서 전문적으로 퍼포먼스를 계속 해오신 퍼포머들은 물성이라는 게 애초에 없으니까 물성화시켜서 판매한다는 것을 고민하게 되셨고, 오히려 시각예술 안에서 경험에 기반한 퍼포먼스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물성화에는 상대적으로 유리했던 것 같아요. 경험을 가능하게 해주는 매개, 보드게임이나 VR 장비 같은 것은 실제로 그걸 그냥 팔면 되는 거니까요.
한편으로 또 크게 아쉬웠던 것은, 작가들이 1년 동안 준비해서 신작을 선보였는데 정작 플랫폼에 대한 이야기만 언급되고 작업들이 부각되지 않는 현상이었어요. 사실 퍼포먼스 아트는 글로 쓰기도 어렵고, 관련한 글을 계속 쓰는 분이 아니면 단편적인 묘사에 그치는 경우가 많거든요.
퍼포먼스 아트에서는 관객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한데, 그런 것들에 집중하는 깊이감이 있는 글을 언론에서 찾아보기가 힘들어요. 오히려 전문 비평 같은 것들이 있어서 관객들의 역할이나 경험 안에서 배우의 역할 같은 것들을 메타비평적으로 다루면 좋을 것 같은데 아직 국내에서는 그런 영역이 잘 보이지 않기도 하고요.

왼쪽부터 김웅현, 몰라, 릳 ©청두
확실히 《퍼폼》 자체가 흥미롭게 받아들여지는 것, 말하자면 신선한 플랫폼으로서 자꾸 조명받는 것 역시 그런 배경에 기인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비물질 예술 자체가 생소한 것이나 신기한 것이 아니라 좀 더 자연스럽고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플랫폼보다는 작품이나 작가 자체에 더 집중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올해 이후의 《퍼폼》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을까요?
여러 번 행사를 거치고 나니, 이제 행사나 무대를 꾸리는 것 자체는 쉽게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하드웨어를 준비할 수 있는 능력이 된다면 사실 터뜨리는 것만 남았다고 볼 수 있는데요. 과연 이런 젊은 작가들을 소모시키면서 일회성의 행사를 반복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들거든요.
아니면 젊은 작가들의 활동을 잠깐 옆으로 놓고 아예 외국의 유명한 작가를 섭외해서 터뜨리는 게 먼저인지, 혹은 지금처럼 《퍼폼》이 완전히 뒤로 물러나서 배경으로서 플랫폼의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맞는지. 이런 여러 가지 것들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한국에는 비물질 예술에 대한 본격적인 아카이브는 없죠. 외국에서 한국에 어떤 비물질 예술 작가가 있는지 검색할 수 있는 플랫폼 같은 것이 아예 없으니까요. 《퍼폼》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당장은 6월 정도에 한번 더 작가를 서칭해서 웹사이트를 업데이트할 생각이고요. 또 작년에 있었던 전시에서 작업을 했던 작가들, 퍼포머들을 아카이브에 반영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퍼폼》 아카이브는 사실 카테고리도 없고, 비평도 없죠. 조금씩 늘려가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저희는 플랫폼을 꾸리다 보니까 생긴 자료들이라서, 제가 노력한 거라고는 그저 작가들에게 계속 전화를 거는 것 정도였어요. 아무래도 퍼포먼스 아트에 주목하고 있는 기관들도 많고, 기회가 생길때마다 이야기가 되면 영역이 더 넓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행사가 없어지고 온라인 아카이브로 전환된 작년에 얻은 귀중한 성과가 있다면, 작가분들이 응원을 엄청 많이 해주고 계시다는 것이었어요. 우리가 계속 대여비나 작품 판매비 같은 것들을 책정해나가면, 그게 작가들에게는 본인의 작품을 어느 정도 가격으로 볼 수 있는지 기준 같은 것이 되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퍼폼》 외부의 기대치 같은 것이 있다기 보다는, 오히려 내부에서 작가들과 이야기나누면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듣고 거기서 힘을 많이 얻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비물질 작업을 하는 작가들에게는 정말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행사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비물질 예술을 둘러싼 다양한 이슈들, 고민들 이야기를 나눠주셨는데요. 비물질 예술 자체의 확장, 그리고 전환된 플랫폼으로서의 《퍼폼》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해나갈지 기대가 됩니다. 그럼 오늘 인터뷰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웅현 ©청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