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는 소리가 아래로 굴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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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는 소리가 아래로 굴절한다, 혼합재료, 600 x 600 x 1000(mm), 2019 ⓒ신제현



안녕하세요 청두입니다.

벚꽃이 눈발처럼 흩날리고 나니 어느덧 가지엔 푸른 새순이 돋아납니다. 연하디 연한 새순이 딱딱한 가지를 뚫고 나오는 것을 보면서 ‘부드러움’의 강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은 새순처럼 투명하면서 가벼운 부드러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이번 주 ‘작업의.기술’을 통해 소개할 작품은 신제현 작가의 2019년 작 밤에는 소리가 아래로 굴절한다.입니다. 이 작품은 벽면에 영상이 프로젝션되는 가운데, 목조 구조물 위에 빛을 반사하는 글씨들과 광원들이 원운동을 하는 작품입니다.

조선 초,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알리기 위해 쓰여진 〈용비어천가〉는 그 기쁨을 전하기 위해 춤과 음악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치화평〉같은 악곡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유물로 기록되었던 음악은 2019년 예술가를 만나 회전하고, 발광하고, 반사하고, 이야기하는 새로운 형태의 악보가 되었습니다.

작품 안에서 빛을 반사하고 있는 글씨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치 거울처럼 반듯하게 잘려진 글씨의 형태가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어떻게 거울을 이렇게 재단할 수 있었을까요?



밤에는 소리가 아래로 굴절한다, 혼합재료, 600 x 600 x 1000(mm), 2019 ⓒ신제현



글씨들은 얼핏 유리 같아 보이지만, 사실 유리가 아닙니다. 거울처럼 반사판이 접합된 아크릴 수지입니다. 을지로 거리를 걷다 보면 ‘아크릴’이라는 이름의 간판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공장들에서 가공해내고 있는 주 재료가 바로 아크릴 수지입니다. 아크릴은 을지로에 늘어선 공장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우리 생활 곳곳에서 많이 쓰이는 재료이기도 합니다.


을지로4가 중부 아크릴 ⓒ청두


아크릴 수지(이하 아크릴)는 아크릴산 및 메타 아크릴산과 그 유도체를 주성분으로 하는 비닐계 공중합체 수지를 지칭합니다. 기본적으로 매우 투명한데 빛, 그중에서도 자외선의 투과율이 유리보다도 높다고 합니다. 또한 유리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전기절연성·내수성이 우월하다는 장점을 가집니다. 때문에 잘 깨지기 쉬운 유리를 대신해 항공기의 특수 창유리, 조명기구, 차량 유리, 시계와 같은 곳들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다른 합성수지들처럼 아크릴 역시 열에 쉽게 반응합니다. 150℃ 이상에서 압축 성형이 가능하고, 이런 특성을 활용해 열로 절단하는 레이져 커팅을 통해 다양한 형태를 만들기에도 적합합니다. 컴퓨터를 이용해 글씨의 외곽 라인을 만들면 그것은 레이저가 움직이는 경로가 됩니다. 그 경로를 따라 레이저 노즐이 열을 뿜으며 이동하고, 그 움직임의 결과로 재단된 아크릴을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아크릴 레이저 커팅 과정



작품 <밤에는 소리가 아래로 굴절한다.>의 거울처럼 반짝이는 글씨 역시 이렇게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유리는 경도가 높아 잘 깨지므로 다양한 곡선으로 잘라낼 수 없지만, 아크릴은 그 유연한 물성 덕분에 가공이 용이했습니다. 바로 이 ‘부드러움’을 통해 작가의 예술을 피워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밤에는 소리가 아래로 굴절한다, 혼합재료, 600 x 600 x 1000(mm), 2019 ⓒ신제현




신제현 작가는 2021년 3월 17일부터 5월 9일까지 문화역서울284 전시 《보더리스사이트》에 참여하고 있다고 합니다. 신작 <회전하는 경계, 2021>를 만나보시길 추천합니다.


<회전하는 경계, 2021>중국 단동에서 압록강을 건너 보이는 
신의주의 <태양호텔>에 대한 언론의 거짓정보를 예술적 판타지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 신제현 -

보더리스사이트 전시 전경, 문화역서울 284 , 2021.03.17-05.09 ⓒ신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