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미술관, 역할의 이야기들 | 한승주

들어가는 말


광화문을 걷다보면 우연히 한번쯤은 마주치게 되는 미술품이 있습니다. 22미터의 높이를 가진 검은 형상, 바로 <해머링 맨>이라는 작품이죠.


이 <해머링 맨>은 건물 3층에 자리하고 있는 세화미술관의 작품입니다. 도심 한가운데, 고층 빌딩 안에 자리한 세화미술관은 ‘도심 속 열린 미술관’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다양한 도시 삶의 모습들을 전시로 선보이고 있는데요.


오늘은 이 세화미술관의 한승주 큐레이터를 만나보았습니다. 세화미술관의 처음부터 함께 해 온 한승주 큐레이터는, 미술관이 도시 한복판에서 어떠한 역할을 해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고민들을 함께 들어보실까요?



왼쪽부터 몰라, 릳, 한승주 ©청두



도심 속 열린 미술관


안녕하세요, 오늘은 세화미술관의 한승주 큐레이터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어보겠습니다. 한창 전시를 준비 중이라 정신없으실텐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안녕하세요. 세화미술관에서 일하고 있는 한승주라고 합니다. 태광그룹에서 운영하고 있는 세화미술관은 광화문에 위치하고 있는데요. ‘도심 속 열린 미술관’을 모토로 하여 국내 현대 미술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기획 전시를 중심으로 운영 중에 있습니다.


세화미술관에서는 언제부터 일을 하셨던 건가요?


제가 일을 한 건 2016년부터였어요. 지금 세화미술관이 있는 이 장소는, 이전에는 일주&선화 갤러리가 운영되고 있었는데, 제가 일을 하게 되었던 즈음에 새롭게 세화미술관으로 새롭게 개관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원래 갤러리가 층의 한쪽만을 쓰고 있었는데, 전체를 모두 합쳐서 세화미술관으로 확장 개관하게 되었죠.


그러면 세화미술관이 처음 개관을 했을 때부터 쭉 계셨던 거네요. 세화미술관이 만들어가고 있는 정체성의 많은 부분을 함께 하셨을 것 같은데요. 세화에 오시기 전에도 같은 분야에서 일을 하고 계셨었나요?


대학에서는 디자인과 미술사를, 대학원에서 미술사 전공을 했어요. 전시기획 쪽에서 이런 저런 일들을 하다가 마침 운이 좋게도 세화미술관에 들어오게 되었네요.


제가 세화미술관에 처음 입사했을 때에는 홍보 담당으로 들어왔는데, 제 위에 총괄로 계시던 분이 개인 사정으로 그만두게 되면서 기획 일이 저에게 자연스럽게 넘어오게 됐어요.


사실 시작했을 때에는 뭘 어떻게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기 보다, 그렇게 일이 넘어봐 버렸네요. (웃음) 그때부터 미술관을 새롭게 만든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고민을 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베른트 할프헤르 작가님의 개인전을 2전시실에서만 꾸려서 개관했고, 개관한 이후에는 예술의전당과 저희가 원래 같이 해오던 사업이 있어서 그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 기념전을 열기도 했었어요. 세화미술관은 태광그룹의 세화예술문화재단에 의해 운영되는데, 저희 재단에서 서예법첩이라고 하는 서예 책 발간을 후원하면서 그 기념전을 하게 된 거죠.


두 번의 전시를 정신없이 마치고 세 번째 전시를 해야 하는데, 뭘 해야 하나 고민이 많이 들었어요. 그때 초점을 맞추었던 것이 재단에서 내걸었던 도심 속 열린 미술관’이라는 슬로건이었죠.


미술관은 세화미술관 말고도 굉장히 많이 있고, 비영리 공간이나 독립공간들에서는 이미 실험적인 전시들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슬로건을 바탕으로 대중에 좀 더 초점을 맞추는 방향을 잡았어요. 그러면서 결정된 것이 도시 이야기를 해보자는 것이었죠.



©청두



지금 준비 중인 전시도 그 도시 이야기의 연속인 거죠?


네, 맞아요. 처음에 그렇게 도시 시리즈를 만들게 되었고, 기업에서 운영하는 미술관이다 보니 기업의 모태가 된 산업을 미술로 풀어보자는 아이디어도 나왔어요. 그렇게 해서 섬유전 시리즈가 만들어졌고요.


또 세 번째로는 미디어아트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하기도 했죠. 2000년대 초반에 ‘일주 아트하우스’라고 미디어 분야의 신진 작가들을 지원하는 센터가 이곳 1층에 있었거든요. 2000년대 초반이면 사실 미디어아트는 굉장히 생소한 분야였는데, 작가들에게 스튜디오와 장비를 모두 제공해주는 공간이 운영됐었어요.


그게 벌써 20년 전이니까요. 그때 데뷔하셨던 작가님들은 지금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계시니까, 그분들을 홈커밍으로 다시 초청해서 전시를 해보면 어떨까, 이런 개념의 미디어 전시를 하기도 했었어요.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기획하셨던 전시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는 어떤 것인가요?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를 꼽으라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도시 시리즈를 꼽을 수 있겠네요. 도시 시리즈는 이야깃거리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도시 시리즈의 두 번째 전시였던 《팬텀시티》를 진행하면서 제가 하고 싶었던 전시의 방향을 잡게 되었어요.


저는 공간디자인을 전공했어요. 처음에는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꿈을 꿨었는데, 미술에도 원래 관심이 있었으니까 졸업전시에서 미술 공간을 디자인해보겠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교수님이 ‘화이트큐브만 있으면 되는데 무슨 공간 디자인을 하겠다는거냐?’라고 물어보시는 거예요.


당시에는 제가 그 질문에 대답을 잘 못했었죠. 그래서 더 많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미술사 전공으로 공부를 더 하게 되었고, 공간을 어떻게 채워나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그때부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바로 이 지점이 《팬텀시티》에서 잘 드러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민을 가지게 된지 오랜 시간이 지나서 전시에서 공간과 작품이 잘 어우러지는 것을 보게 되었고, 또 그래서 대중에게 전달이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지금 준비 중인 전시도 같은 부분을 포인트로 기획하고 계신 건가요?


네, 이번 전시도 연장선상에 있는 세 번째 전시죠. 이전까지의 전시들이 대중들이 잘 알만한 작품들을 전시하는 방식이었다면, 이번 전시의 경우는 도시 속에서 어떠한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지 이야기들을 좀 더 풀어내고자 하는 전시입니다.


‘도시’라는 주제를 시리즈로 계속 가지고 가려고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이 ‘이야기들’을 한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야 다음에는 다른 주제들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이런 기획에서 시각예술 작가뿐만 아니라 기획자나 영화감독, 안무가까지도 참여해서 전시를 만들고 있어요. 다양한 분야 창작자들의 시선을 통해서 본 도시의 이야기들을 담아내고자 하고 있습니다.



©청두



사회적 의미에 대한 질문들


처음에 세화미술관에 대해 소개해주실 때도 그렇고, 도시 혹은 대중의 맥락과 계속 접점을 찾으시려고 하는 느낌이 듭니다. 염두에 두고 계신 부분이 특별히 있으신가요?


말씀드린 것처럼 저희 미술관은 재단 사업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사회공헌사업’을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미술관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저희 <중심잡지>에서 작년에 했던 인터뷰 중에, 몇몇 인터뷰에서 ‘사회적 역할’에 대한 화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어요. 특히 공공기금을 받아서 진행되는 전시나, 아예 공공기관에서 수행하는 프로젝트들은 이 ‘공공성’이라는 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구현해야 되는가, 이런 질문이었죠. 그런데 민간에서 운영되고 있는 미술관에서 사회공헌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계신다니, 또 다른 결에서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사회공헌이라고 하면 여러 가지 측면이 있을 거예요. 이어서 해오고 있는 도시 시리즈처럼 전시의 내용으로 질문을 던지는 방향도 있을 수 있고, 또 한편으로는 작가들의 작업을 그런 측면에서 지원하고 있기도 해요.


작년에 있었던 《아티스트로 살아가기》 전시처럼 신진 작가들의 작업과 지원에 집중하는 기획도 있었고, 미술관 전시 외에도 작가를 지원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많이 기획하려고 하고 있어요. 공간이 있다면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나 미술상 같은 것도 기획해보고 싶고, 신진작가들을 기획하는 프로그램도 계속 염두에 두고 있거든요.


아이디어들도 많고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은데 차차 해결해가야죠. 《아티스트로 살아가기》 와 같은 방향성의 전시나 프로그램이 저나 미술관이 계속 가지고 가고 싶은 방향인 것 같아요.



왼쪽부터 몰라, 릳, 한승주 ©청두



그러면 작가에 대한 리서치도 계속 하고 계시겠네요.


네, 그렇죠. 사실 재단에 의해 운영되는 미술관이다보니 작품과 기획이 어떻게 사회공헌과 연결되는지를 계속 고민해야 해요. 미술관이라는 공간에 전시가 올려진 것을 결과물로 우리는 볼 수 있지만, 사실 현장에서 전시를 만들어내기까지 시스템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잖아요.


모두가 불편하지 않고 모두가 행복한 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스템을 만들어서 운영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작가를 리서치하고, 섭외하고, 계약하고 공간을 조성하기까지, 이 단계들을 다 시스템화시키는 거죠.


불투명한 상황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면 서로 불편하고 감정이 상하는 지점들이 생길 수 있는데, 시스템을 따르면 어려운 상황들을 조금 줄여나갈 수 있거든요. 그런 것들을 잘 마련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사실 시스템이 잘 마련되어 있어도 그 많은 과정들을 거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텐데요. 사회공헌이라는 베이스를 염두에 두고 계시다고도 하셨지만, 전시를 기획하고 진행하실 때 어떤 지점에서 가장 동기부여가 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우선 제가 개인적으로 창작자들을 되게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작품 보는 걸 좋아하기도 해요. 작품을 알고, 작가님들을 만나는 미팅 전 단계가 가장 긴장되곤 하는데요. 그분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 것부터가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아요.


이 작품을 어떻게 우리 공간에 풀어놓을 수 있을 것인가? 이런 것들을 상상하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면 흥미로운 것들이 나타나거든요. 사실 작품만 보다가 실제로 만나면 성격이 너무 다르게 느껴지는 분들도 있죠. 그 과정들이 다 재미있는 것 같아요.



©청두




미술관의 시작부터 함께 하셔서, 아무래도 방향성에 대해서 계속 고민을 하고 계실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이런 것들을 떠올릴 수 있는 미술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방향이 있다면요?


처음 기획을 시작했을 때에는 너무 어려운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 미술관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어요. 깊게 파고 들어가면 대중들이 이해하기에 난해한 전시가 되기 쉽기 때문에, 현대미술을 표현하고 있어도 기획을 통해 더 쉽게 풀어낼 수 있는 방향으로 가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런 측면에서 공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대중들에게 조금 더 감각적으로 다가갈 수 있기 위해서 공간 자체의 역할이 중요하거든요. 그리고 전시 기간 중에 도슨트 프로그램이나 아티스트 토크도 계속 운영하면서, 대중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들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지금 한창 설치 중인 전시에서 도시의 이야기들을 공간의 맥락을 통해 어떻게 풀어낼지 매우 기대가 되네요. 또 앞으로 세화미술관이 어떠한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펼쳐나갈지도 기대되고요. 오늘 인터뷰는 여기서 마칠까 합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승주 ©청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