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중 밑줄을 클릭하시면 더 많은 정보를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도망치는 꽃, 140x140x700, Arduino & Aluminum frame & flower & acrylic frame & motor, 2020
‘식물에게 발이 있다면 인간을 피해서 도망갈까?’ 거대한 장비들로 파헤쳐지는 현장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필연적으로 움직일 수 없는 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식물은 비극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거나, 그것을 교묘하게 이용해 생존해왔습니다.
열대우림 벌목 전경. ⓒ 몽가베이
풀 뜯어 먹는 삼공이. ⓒ청두
이번엔 여인혁작가의 〈도망치는 꽃〉이라는 작품을 통해 작업의 기술을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꽃이 도망 다닌다.’ 누구로부터 어떻게 도망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동할 수 없는 식물이 도망이라는 행위를 한다는 작품 제목만 들어도 ‘어떤 상황’을 상상하게 됩니다.
화이트 큐브에 들어서면 네모난 화분에 담긴 식물이 다가가는 사람들을 피해 일사불란하게 도망 다니는 현장을 마주하게 됩니다. 사람을 피해 다니는 식물은 마치 어느 애니메이션에서 나올 거 같은 귀여운 모습을 하고 있고, 어떤 ‘약자’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기도 합니다.
작가는 왜 이런 작업을 만들게 된 것일까요. 시간을 좀 과거로 돌려보겠습니다. 여인혁 작가는 인간과 식물과의 관계가 어떻게 되어야 좋을 것일까를 고민하다 인간의 틈에서 힘들게 생존하고 있는 도심 속 풀들을 구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고 합니다. 구출을 위해 식물을 뿌리째 뽑아 옮겨 심는 과정을 거쳤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작가는 식물의 동의 없이 자신의 임의대로 움직이려 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그때부터 식물이 스스로 돌아다니면서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구할 수 있게 하면 어떨까를 고민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도망치는 꽃〉이 탄생하였습니다.
City, 〈도망치는 꽃〉 전시 현황, 을지로 오브 ⓒ여인혁
식물을 대표하는 작업의 주 소재로 쓰인 식물이 소철입니다. 소철은 한때 유통이 많이 되었던 종이나 현재는 유통량이 적어져 시장에서 모습을 감췄다고 합니다. 인간이 경제활동을 하기 위해 기른 식물은 유행에 따라 개체 수가 조절되는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렇게 인간이 만든 시장은 자연환경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렇게 식물은 사람을 피해 계속 도망 다닙니다.
어떻게 식물의 도망은 가능했을까요. 컴퓨터를 한자로 電腦(전뇌)라고 씁니다. 전기로 작동하는 뇌라는 뜻입니다. 전기를 통해 운영되는 인공신경망은 인류사를 이전과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게 만들었습니다. 작가 여인혁은 식물에게 전자로 작동하는 인공 뇌를 이식했습니다. 여기에 외부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는 센서와 반대 방향으로 바퀴를 돌릴 수 있는 동력을 달았습니다. 이렇게 소철은 사람이 다가오면 움직임을 인지할 수 있게 되었고 반대편으로 도망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소철나무'와 '도망치는 꽃' ⓒ여인혁
인지와 움직임을 제어 할 수 있도록 개발된 소형 컴퓨터는 ‘아두이노’입니다. ‘아두이노’는 2005년 이탈리아 이브레아(Ivrea)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마시모 반지(Massimo Banzi) 교수와 데이비드 쿠아르테에예스(David Cuartielles) 교수가 학생들에게 기초적인 인터렉션을 가르치기 위해 개발되었다고 합니다. 교육을 위해 개발되었다 보니 원리를 빠르게 이해할 수 있고 구동이 쉬워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데 확산성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현재는 다양한 국가에서 메이커들과 예술가들에게 사랑받는 기술이 되었습니다.
▲아두이노 홈페이지
아두이노 활용 사례 영상 ⓒViral Hattrix
어떤 감각을 인지하게 할 것인지, 받아들이는 감각에 따라 어떻게 반응하게 할 것인지를 설계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움직임에 반응하게 설계할 것인지에 따라 아두이노는 다양한 형태로 존재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여인혁작가를 만난 '아두이노'는 물체를 인지하고 바퀴를 굴릴 수 있는 방식을 알게 되었고, 식물의 발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렇게 도망간 식물은 어디로 가고 싶었을까요?
현생 인류가 만든 것 중 가장 공을 많이 들이고 꾸준히 고도화되어온 것 하나만 꼽으라 하면 그것은 아마 ‘도시’일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도시의 역사는 인간이 자연을 피해 자신들만의 세계로 숨어드는 과정을 지나, 인간의 삶에 자연을 담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의 의도와 무관하게 도시의 틈엔 항상 식물이 있었고 변수로 작용해 왔습니다. 앞으로 인간들의 요청으로 그들의 영역은 점차 확대되어 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시 그들을 모셔와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극심한 변화와 위험 속에서 우리의 내일은 수많은 종과 함께 살아가는 도시를 맞이 할 수 있길 희망합니다. 더는 꽃이 도망가거나, 인간이 도망가지 않길 희망합니다.
작품사진

도망치는 꽃, 140x140x700, Arduino & Aluminum frame & flower & acrylic frame & motor, 2020
작가 인터뷰
아티스트 여인혁 ⓒHEZ
작품제작에 도움을 주신 분들 동경조명. 아크릴최가. 차산전력. 에이브이컴. 삼화알미늄. 소문모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