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1999년 한국 최초의 ‘대안공간’으로 출발한 대안공간 루프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다양한 실험들이 이루어져왔던 공간입니다. 홍대 지역이 상징했던 문화적 실험과 다양성의 한 중심의 있던 공간이기도 했는데요.
이번 주에는 대안공간 루프의 디렉터로 있는 양지윤 큐레이터를 만나보았습니다. 양지윤 큐레이터는 대안공간 루프에서의 활동 이전에도 여러 공간들에서 다양한 공간적 실험을 해왔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사운드 아트 페스티벌을 기획하는 것과 같은 넓은 영역에의 기획적 시도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큐레이터로서 전시의 외관을 만드는 것 이외에도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요? 또 대안공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지금의 ‘대안적’ 방향성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양지윤 큐레이터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함께 보시죠!

양지윤 ©바까
저자로서의 큐레이팅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먼저 시작에 앞서 간단히 자기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독립 큐레이터라고 생각하는, 대안공간 루프에서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는 양지윤입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대안공간 루프의 기획들과 더불어 독립 큐레이터로서의 가지고 계신 지향성도 함께 들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안공간 루프에 디렉터로 오시기 전에도 많은 일들을 해오셨는데요. 처음에 큐레이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한국에서 대학교를 1년 정도 다니다가, 3D 컴퓨터 그래픽을 배우고 싶어 뉴욕에 있는 대학교로 편입을 했어요. 그때는 시각예술계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영화나 광고 회사, MTV 같은 문화산업계의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었죠.
대학교 시절, 클릭 3 X라는 뉴욕의 유명한 광고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을 했어요. 제 업무의 많은 비중은 데이터를 직접 전달하는 일이었어요. 회사 주변에는 오디오 믹싱, 촬영, 프린팅 등 광고 관련된 회사들이 밀집되어 있었거든요. 그런 회사들 사이를 뛰어다니는 일이었죠.
영화에서 나오는 맨해튼 광고계 종사자들, 어떻게 보면 근사한 삶인데 사실 힘든 부분도 많았어요. 고용 조건이 너무 안 좋았죠. 어느날 해고 통보를 받으면 그날 당장 짐 싸서 나가야 하는 살벌한 곳이었거든요. MTV는 30살이 넘으면 자동 해고되는 계약을 해야 했어요. 뉴욕 광고계에서 성공했다는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저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죠.
오히려 비영리 예술에서 조금 더 인간답게 사는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순진한 생각이었지만요. 대학원 때 이곳 대안공간 루프에서 인턴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죠.
대학원 졸업과 함께 루프에서 큐레이터로 시작했어요. 그때만 해도 큐레이터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게다가 급여도 많지 않고 근무 시간도 불분명한 대안공간의 큐레이터보다는, 안정적인 미술관에 취직하는 것을 선호했어요.
하지만 제게 대안공간이 좋았던 점은, ‘내가 하고 싶은 전시를 기획할 수 있다’라는 조건 때문이었어요. 루프는 대형 기관이 아니었기에, 제가 어떤 기획을 제안했을 때 민주적 절차를 통해 받아들여지고 제 전시를 기획해 볼 수 있었죠, 이후 2년 동안 거의 개인생활이 없이 전시 기획 일을 했어요.
제가 기획한 전시를 처음으로 올려보고, 기업 협력 전시도 만들어 보는 등 다양한 기획 경험을 열심히 쌓았죠. 실무 경험을 2년 정도 쌓으면 전시를 만드는 과정의 대부분의 업무들을 할 수 있게 돼요. 아티스트를 초대하고, 기금을 신청하고, 회계 정산까지 모든 과정을 할 수 있게 되거든요. 그런데 그 실무가 다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2008년 암스테르담의 데아펠 큐레이터 프로그램(De Appel Curatorial Programme, 이하 데아펠)에 참여하면서, 큐레이팅의 역사, 큐레이터의 역할과 윤리, 지금이라는 상황에 대한 완전히 다른 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왼쪽부터 릳, 양지윤, 몰라 ©바까
그 이전까지의 실무에서 몰랐던 점이라면, 어떤 것들을 새롭게 알게 되셨나요?
데아펠에 가기 전 한국에서 제 일은 문제가 무엇이든 신속하게 문제를 처리해 내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데아펠에서는 큐레이터인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그리고 현대 미술 전시가 동시대 사회에서 어떤 기능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다르게 접근하는 방법을 다루었죠.
가장 중요한 방법 중 하나가 ‘저자(author)로서의 큐레이팅’이었죠. ‘저자로서의 큐레이팅’은 큐레이터가 전시라는 매체를 통해 자신의 관점을 관객과 이야기하는 방식을 말해요. 독립 큐레이터에 관한 교육을 데아펠에서 받았어요. 정부 기관이나 자본의 논리로부터 독립적으로, 저자로서 자신의 관점을 전시로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것이죠.
구체적으로 데아펠에서 하셨던 작업을 소개해주시겠어요?
8개월간의 데아펠 과정에서, 해마다 전시 주제를 줍니다. ‘컨텍스트에 반응하기context responsive’라는 전시 주제에 대한 접근 방식과 함께요. 이 방식은, 제공 받은 전시 주제를 반드시 수용할 필요는 없으며, 반대할 권리와 언급조차 안할 권리를 함께 갖는다는 것이었어요. 2008년 전시 주제는 암스테르담 북구라는 지역이었어요.
암스테르담은 다섯 개의 구로 되어있는데, 북구는 면적으로는 가장 크지만 관광객이 찾지 않는 지역이었어요. 관광지 대신 1920년대에 저소득층을 위해 지은 소셜 하우징이 그대로 남아있었죠.
암스테르담은 스쾃 운동(squatting) 때문에, 거주하는 이들을 함부로 쫓아낼 수가 없어요. 북구에서 빈 집이 나올 때마다 큐레이터나 아티스트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임대를 주는 정책을 시행합니다. 시가 정책적으로 예술계 사람들을 활용해서 젠트리피케이션을 하겠다는 것이었죠. 저도 그렇게 제공받은 집에서 살았어요.
저희 전시는 ‘이러한 젠트리피케이션 정책 안에 살고 있는 큐레이터와 아티스트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젠트리피케이션 정책 안에서 활동하면서, 젠트리피케이션에 반대한다고 주장하는 행위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우리가 그리는 미래는 과연 무엇일 수 있는가’라는 것이었어요. 결국 큐레이터로서 내가 누군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 전시가 되었어요.
데아펠 전시 또 하나 중요한 부분은 큐레이터가 아티스트에게 신작을 커미션한다는 기획 방식이었어요. 큐레이터가 할 수 있는 창의적 활동 중 하나가 아티스트의 신작을 함께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것이죠. 그 중 한 작업인 장영혜중공업의 신작에서는 ‘왜 아티스트에게 도시 개발 문제를 질문하는가’라고 말해요. 도시개발업자에게 맡길 일을, 가장 무책임할 수 있는 아티스트에게 사회적 책임을 지우냐는 것이죠.
굉장히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면서 저는 <중심잡지>가 기반으로 삼고 있는 을지로 생각이 많이 났는데요. 을지로 역시도 개발과 젠트리피케이션의 압박을 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고, 을지예술센터는 이 오래된 지역에서 예술이 어떻게 지역과 관계맺을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네, 을지예술센터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하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그런 고민을 이어나가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현대미술계에서 계속 반복되는 클리셰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잖아요. 문제는 이 비판이 너무 고민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에요. 치열한 고민 없이 만들어진 공허한 비판이 반복되고 있죠. 이런 것을 중단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대안공간 루프 전경 ©바까
공간에 대한 고민들과 사운드 아트
데아펠 이후 한국에 오셔서도 다양한 예술 공간을 기획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데아펠의 경험을 가지고, 아무런 계획 없이 한국에 돌아왔어요. 며칠 후 고낙범 작가 전화를 받았어요. 컬렉터 한 분이 소유한 이태원 건물의 3개 층을 1년간 무료로 쓸 수 있다는 거예요. 공간을 보러 갔는데 생각보다 꽤 크더라고요. 그곳을 1년이라는 한정된 기간 동안 예술 전시 공간으로 사용하기로 하고, ‘공간 해밀톤’이라는 이름으로 계원예술대와 함께 운영했습니다. 그 지역이 젠트리피케이션 되기 직전이었죠.
‘전시장이 위치한 위치에 따라 관객이 어떻게 바뀌는가‘에 관한 문제를 고민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2012년부터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맞은편에 있던 ‘코너아트스페이스’라는 공간을 운영했는데요. 길을 지나는 사람들 누구나 전시를 볼 수 있는 윈도우 갤러리였어요. 저는 이 공간을 공공미술 프로젝트라고 생각하는데요. 우스갯소리로 ‘강남 유일의 비영리 공간’이라고 이야기들을 했었죠.
코너아트스페이스라는 제 개인 프로젝트와 함께, 5년간 파주출판도시의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에서 큐레이터로 근무했어요. 가족 단위로 주말 나들이 오는 관객이 많은 지역이었어요.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알바루 시자라는 거장 건축가가 설계했는데요. 규모가 상당하고 그야말로 아름다운 모더니즘적인 전시 공간이에요. 저는 이곳에서 중견 작가들의 중간 회고전 성격의 전시를 기획했어요. ‘서울 근교 대형 전시공간에서 어떤 작가를 소개하면 좋을까‘라는 고민에 대한 답이었죠. 아티스트는 어느 정도 나이를 지나게 되면 ‘핫한 이슈’로 주목 받는 시점을 넘어서잖아요. 하지만 작업은 계속해서 쌓이는 과정에 이르거든요. 그렇게 쌓인 내공을 보여줄 기회가 필요한데, 대형 전시 공간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어요.
그 지역의 사람들이 이 전시 공간을 어떤 이유에서 찾는지, 그리고 그 이유에 따라서 전시를 어떻게 바꾸어 갈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죠. 사실 ‘관객이 누구인가’라는 주제는 암스테르담에 있을 때부터 시작했던 고민인데, 계속해서 이어져왔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양지윤 디렉터님은 사운드 아트 페스티벌을 기획하기도 하셨었는데요. 시각 예술과 다르면서도 겹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은데, 처음 사운드 아트에 대한 기획을 하게 된 건 어떤 계기에서였나요?
제가 뉴욕에서 학교를 다녔을 때 일렉트로닉 음악이 유행이었어요. 컴퓨터 아트를 전공하다보니 주변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일렉트로닉 음악을 듣고 있었고, 주말이면 뉴욕 클럽에 유럽에서 온 DJ의 음악을 듣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곤 했어요.
당시 일렉트로닉 음악이 언더그라운드 문화였어요. 일렉트로닉 음악씬은 사막에서 캠핑하면서 함께 듣는, 마지널(marginal)한 사람들 간의 연대 같은 것이었으니까요. 지금은 상업화가 되어, 일렉트로닉 음악 페스티벌에 벤츠가 후원하는 상황이 되었지만요.
누군가는 록 음악을 제 청년 정신으로 이야기하듯, 저한테는 일렉트로닉 음악이 제 출발점이에요. 그 이후로도 실험 음악들에 대해서 계속 관심을 가져왔는데요. 2006년 제가 대학원에 있을 때 바루흐 고틀립(Baruch Gottlieb)이라는 아티스트가 교수로 와 있었어요. 그분이 저에게 사운드 아트에 대한 기획을 함께 하자고 제안했어요. 처음에는 학술행사로 시작을 했는데, 그것이 점점 커져서 국제 사운드 아트 페스티벌이 되었죠.
2007년 첫 행사는 사운드 아트라는 새로운 장르를 전체적으로 소개해주는 서베이(survey) 전시였어요. 그 다음 해부터는 매해 주제를 가지고 기획했어요. 2008년 행사는 홍대의 한 대안공간에 라디오 방송국을 차려놓고, 3주간 매일 라이브 방송을 했었죠.
당시는 인터넷 방송의 초창기이기도 해서 주파수 방송과 함께 인터넷 방송을 시도했어요. 홍대라는 지역 특성을 살려, 인디밴드들이 공연도 하고, 라디오극이나 아티스트 인터뷰도 진행했어요. 일본의 라디오 아트 액티비스트인 코가와 테츠오 선생을 초대해서, 소출력 라디오 송신기 제작 워크샵도 했어요. 참여한 이들 모두가 각자의 송신기로 라디오 방송국을 만들 수 있었죠.
이후 저는 암스테르담으로 가고 고틀립 선생도 베를린으로 돌아가면서 페스티벌을 쉬게 되었어요. 2017년 10주년을 맞아서 다시 사운드 페스티벌을 기획해보자는 이야기가 되었어요. 2017년은 러시아 혁명 100주년이 되는 해여서, ‘혁명의 소리’라는 주제에 집중해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촛불집회’가 일어났죠. <혁명은 TV에 방송되지 않는다> 전시는 아르코 미술관 1층을 마치 혁명의 무대처럼, 어수선한 혁명의 거리로 전시장으로 만들었어요. 혁명이라는 단어가 남발하는 지금, 무엇이 혁명일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했어요. ‘촛불집회’는 민주적 권력 이양의 과정일 뿐, 혁명은 아니라는 비판적 관점과 함께요.

©바까
사운드 작업이라고 하면 어떤 전형적인 형태를 떠올리기가 힘든데, 사운드 아트에 초점을 맞추시게 된 이유가 있으시다면요?
지금 한국의 ‘듣기 문화’에서는 대중 음악의 비율이 너무 전면적이죠. 제가 말하는 대중 음악은 고급 음악과 대별되는 의미가 아니라, 문화산업으로서 대중 음악을 말합니다. 사운드 아트는 말하자면 문화산업으로서 대중 음악과 그 상극에 있다고 할 수 있겠죠. ‘듣기 문화’를 다시 생각해보는 새로운 경험들을 주는 것이 바로 사운드 아트입니다.
사운드 아트에서 노이즈가 중요했던 것도, 노이즈는 그 자체로 일종의 산업 폐기물, 찌꺼기이기 때문이에요. 폐기물을 예술로 가지고 오는 행위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죠. 또한 클래식 음악을 중심으로 한 부르주아 문화 전통에서 벗어나서 어떤 방식의 ‘듣기 문화’가 가능할지 질문하는 것들이 바로 사운드 아트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운드 아트는 2000년대 들어오면서 해외 주요 미술관들에서 장르로서 소개가 되기 시작했어요. 역사가 길지 않은 장르인 거죠. 어디까지를 사운드 아트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여전히 많지만, 그 미적 지향점을 문화산업과 가장 상극에 있는 것으로 두고 있는 청각 문화라고 아우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주제인 것 같습니다. 지금도 계속 사운드 아트에 대한 관심이 이어지고 있으신지요?
네, 올해 2월에 대안공간 루프에서 《레퓨지아: 여성 아티스트 11인의 사운드 프로젝트》(이하 《레퓨지아》)를 통해 여성 예술가들의 사운드 아트 프로젝트를 했어요. 늘 중요한 주제로 가지고 있습니다.
2007년에 처음 사운드 아트를 주제로 한 기획을 만들었을 때에는 관객들이 와서 “볼 게 없는데?”라는 반응이 많았어요. 사실 ‘보는 것’이 아니니까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기도 하죠. 그런데 최근에는 관객들의 반응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껴요.
《레퓨지아》에서 두 시간을 다 들어야 하는 작업들을 끝까지 들으시는 분들도 많이 계셨거든요. 말 그대로 ‘관객 개발’이 되었다고 할까요. 앉아있어 본 경험, 전시를 보고 듣는 경험들이 많이 생겨났기 때문에 이런 작업들을 잘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고 봅니다.

양지윤 ©바까
지금의 대안공간이 제시하는 ‘대안’들
그러면 대안공간 루프 이야기로 조금 돌아가볼까 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올해도 전시들을 계속 이어오고 계신데요. 예전에 일했던 곳에 디렉터로 다시 돌아오게 되셨습니다.
올해로 4년 차가 되었네요. 공간도 사람처럼 삶의 고점과 저점이 있다고 한다면, 제가 이곳에 다시 왔을 때가 아마 대안공간 루프의 가장 저점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2018년 당시 루프는 낡고 철지난 기관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었거든요.
공장미술제 사태 이후였는데, 공장미술제에서 드러난 이슈에 대한 별다른 해결책이나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는 상태였거든요. 그런 문제와 함께 루프의 한 시기가 한 차례 마무리가 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대안공간 루프의 그 다음 삶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요?
제가 4년 전 대안공간 루프의 디렉터를 맡기로 한 이유 중에 하나가, 기획의 독립성을 완전히 보장받을 수 있다는 조건 때문이었어요. 사실 한국에 그런 공간이 없거든요. 데아펠도 말하자면 루프와 비슷한 과정을 거쳤어요. 처음 대안공간으로서 아티스트런스페이스(artist run space)로 시작했거든요. 그러다가 사스키아 보스라는 큐레이터가 디렉터를 맡으면서, 데아펠을 중급기관인 아트센터로 바꾸게 되었죠.
홍대에 있는 ‘현대 미술 실험실’처럼 콤팩트하게 제가 하고 싶은 연구나 기획을 1년 단위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시도 있고 강연도 있고 퍼포먼스도 있는, 공간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나누는 방식의 기획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그런 실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루프의 직책을 맡기로 했어요.
하지만 어떤 매니페스토(manifesto)를 선언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에요. 루프의 프로그램을 기획해오다보니 최근 더 분명해진 것들이 있어요. 결국 ‘현대 예술계에서 클리셰를 벗어나는 자본주의 비판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이었죠. 이에 대한 대안으로 ‘에코페미니즘’이라는 가치에 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어요.
자본주의 비판, 그리고 다양한 방향성의 고민을 가지고 계신데요. 기획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조직을 꾸리고 커뮤니케이션하는 과정이 중요하기 마련입니다. 그 과정을 조율해가는 방식같은 것이 있으시다면요?
네덜란드의 예술 기관들은 ‘환대’라는 가치에 대해 이야기했거든요. 환대는 단지 매너로서 ‘친절’과는 다른 것이죠. 지금 자본주의 사회는 인간의 관계가 사물의 관계로 작동하는 물신화한 사회잖아요. 그러기에 연대로서 환대가 다시 중요해지죠. 환대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하는 투쟁이기도 하구요. 관객을 환대하고, 예술가를 환대하고, 스태프도 서로를 환대하는 이 모든 환대의 과정이 단순히 겉치레가 아니라 진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계속해서 고민을 해왔어요.
큐레이터, 동료들, 작가들과 어떻게 협업을 해야 하는지, 단순히 공간을 주고 당신의 전시를 만들어봐라 하는 식이 아니라, 우리가 갖는 지향점과 가치를 나누고 전시를 함께 조율해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거시적이면서 동시에 미시적인 차원이어야겠죠.
간단한 예를 하나 들면, 올해 루프 목표 중에 하나가 전시 쓰레기를 덜 만드는 것이에요. 아티스트는 특정 형태의 전시를 만들고 싶어 하지만, 지금과 같은 코로나 시기를 겪으면서도 여전히 전시 쓰레기를 더 만들어내는 건 비윤리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요. 설치에서 가능하면 가벽 제작을 없애는 방향으로 바꾸는 조율을 하고 있어요. 작은 실천이지만 쓰레기를 실제로 많이 줄일 수 있었죠.
루프 전시에서 사용했던 커튼 같은 것들을 다른 전시 공간에서 가져가기도 하구요. 그러면 루프 만의 리사이클이 아니라, 다른 공간의 다른 물건으로도 이어지는 거죠. 어떤 전시가 발암물질이 한껏 담긴 저렴한 목재를 사용해 가벽을 만들었다면, 그 전시는 절대 관객을 ‘환대’한다고 말할 수 없겠죠.

왼쪽부터 양지윤, 릳, 몰라 ©바까
관객뿐만 아니라 이 지구를 포함한 모두를 어떤 방식으로 ‘환대’할 수 있을 것인가, 앞으로도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대안공간 루프는 상당한 역사를 가지고 있고, 또 2000년대와 2010년대를 거치면서 많은 ‘신생공간’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대안공간 루프는 지금 ‘대안공간’으로서 어떻게 정체화가 되고 있고, 또 어떤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요?
대안공간 루프가 처음 시작되었던 1999년, 루프는 홍대라는 지역의 언더그라운드 문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어요. 클럽이나 인디음악, 언더그라운드 패션 같은 것들이 현대미술과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그것을 접목시키는 중요한 기능을 맡았었죠.
그런 흐름을 이어오다가 공장미술제에서 불거진 아티스트 피(artist fee) 문제가 본격화됐을 때, 대안공간들이 이야기했던 ‘대안’은 거기서 한번 끝났다고 봐요. 아티스트비 문제를 큐레이터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답하는 것은 공감 받기 어려운 논리였죠.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작년부터 이어져 온 코로나로 인해, 저는 전면적으로 이 질문을 다시 하게 되었어요. 결국 우리가 근본적으로 천착할 것은 자본주의 가부장제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모두가 문화 산업으로만 달려가고, 문화 산업의 눈으로 가치가 매겨지죠. 루프는 관람 티켓을 판매하는 것도 아니고 수익사업을 하지도 않는 비영리 기관이죠. 루프의 가치 평가가 가격과는 별개로 나오잖아요. 다르게 생각하면 이런 조건은 큰 기회이기도 해요. 자본주의 시장논리를 벗어난 가치 평가. 지금 어떤 곳이 이런 조건이 가능하겠어요.
그런 상황에서 새로운 가치가 무엇일까 고민한 끝에 나온 대안이 바로 에코페미니즘이었습니다. 에코페미니스트인 사회학자 마리아 미즈(Maria Mies)가 만든 연구 워크숍 방법론이 있어요. 올해는 그것을 실험해보려고 해요. 주류 사회학의 연구 방식과는 별개로, 각자가 가지고 있는 사적 경험에서 연구를 시작해서 자기 작업에서 어떤 변화가 나타나게 되었는지 살펴보는 거죠.
2020년 ‘예술가를 위한 자본주의 세미나’를 루프에서 진행했어요. 4회마다 3시간 씩 <자본론>을 다시 살펴보는 강연이었는데, 정말 많은 분들이 신청을 하셔서 저도 놀랐어요. 참석한 분들의 진지함에도 놀라기도 했고요. 올해도 계속 그런 강연과 텍스트를 읽는 프로그램들을 아티스트와 결합하여 진행해 나가려 하고 있어요.
저는 루프의 프로그램이 비영리 대안공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질문들을 던지고 고민하는 것이 지금의 숙제가 아닐까 생각해요. 자본주의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 이 기획을 시작하면서 이런 고민을 오래 하셨던 아티스트가 상당히 많이 있음을 알 수 있었어요. 각자의 자리에서 싸워온 아티스트를 다시 소개하고, 연대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환대하는 것. 결국 ‘대안’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네, 앞으로 진행될 기획들이 대안공간 루프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또 어떤 대안을 제시해나갈 수 있을지 많은 기대가 됩니다. 오늘 인터뷰는 여기까지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