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시대, 전시를 넘어선 공간의 고민들 | 신보슬


※ 본 인터뷰는 방역수칙에 따라 참여자 모두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들어가는 말


세상에는 굉장히 많은 미술관이 있습니다. 아주 큰 전시들이 열리는 국공립 미술관들부터, 을지로 곳곳에 숨어있는 아주 작은 공간들까지 모두 전시가 열리는 공간들이죠. 어쩌면 ‘미술관’이라는 이름 자체가 주는 무게감이 너무 큰 것 같기도 해요.


다양한 공간들이 저마다의 역할을 하고 있는 가운데, ‘사립미술관’은 어떤 것들을 하고 있고 어떤 것들을 해낼 수 있을까요? 이번 주에는 토탈미술관의 신보슬 큐레이터를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많은 기획들과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사립미술관으로서 토탈미술관은 다른 미술관이나 공간들이 해낼 수 없는 것들을 찾아내어 펼쳐놓는 멋진 일들을 지속해왔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있었던 고민과 갈등들 역시 흥미로웠는데요. 인터뷰, 함께 보실까요?



왼쪽부터 조형빈, 신보슬 ⓒ오창동



미디어 아트, 그리고 토탈미술관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먼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토탈미술관에서 12년 째, 가족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으면서 (웃음) 장기근속을 하고 있는 큐레이터 신보슬이라고 합니다.


전에 어디 심사를 가게 되었는데, 독립기획자 신보슬이라고 써놓아서 깜짝 놀랬던 적이 있었어요. 사실 기관 큐레이터들이 외부 활동을 활발히 하는 경우가 잘 없어서, 제가 너무 돌아다니니까 독립기획자로 착각하셨던 것 같아요. (웃음)


저는 정말 복이 많은 것이, 관장님께서 기획 일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계셔서 많이 돌아다니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시거든요. 기획이 책상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시고, 바깥에 나가서 강의도 하고 심사도 하고 할 수 있는 건 다 하라고 하세요.


사실 방금 말씀드렸던 것처럼 제가 갖고 있는 이미지 때문에 독립으로 일을 많이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시기도 하는데, 계속 기관에서 일을 해왔었어요. 처음에는 롯데화랑에서 일을 했었고, 아트센터 나비, 미디어시티서울, 대안공간 루프를 거쳐 토탈미술관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조직사회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런 경험들이 일에 많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어느 틈에 몸에 배이니까, 처음 일을 시작할 때에는 그런 조직에서의 경험을 익히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체계를 배울 수 있으니까요.


이곳 토탈미술관은 언제 생겼나요?


처음에 생긴 것은 1976년이었어요. 동숭동에 디자인을 주제로 다루는 토탈갤러리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었습니다. 그러다가 84년에 장흥에 야외미술관을 만들었고, 이곳 평창동에는 92년에 토탈미술관이 생기게 되었죠.


저는 이곳에 2007년에 와서, 이제 벌써 만으로 12년 정도 되었네요. 토탈의 전체 역사 중에서도 제법 긴 기간을 관장님과 함께 했습니다. 어떨 때에는 저희 부모님보다 관장님과 더 오래 같이 있었던 느낌도 들어요. (웃음)


왼쪽부터 권효진, 조형빈, 신보슬 ⓒ오창동


토탈미술관으로 오시기 전에, 미디어시티서울을 비롯해서 미디어 아트를 주제로 전시와 글로 활동을 많이 하셨는데요.


미디어 자체는 제가 석사 논문을 쓰면서 접하게 된 주제였어요. 아트 앤 테크놀로지를 주제로 논문을 쓰게 되었는데, 당시에는 한국에 미디어아트와 관련된 논의가 많이 없던 때였어요.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한 인터랙티브 작업을 중심으로 호기심을 가지고 논문을 썼는데, 그 뒤로 미디어아트에 대한 논의가 확산되면서 여러 기회를 얻을 수 있었죠.


처음 토탈미술관에 왔을 때 들었던 생각이, 미디어시티서울 같은 행사가 많아져야 하고 그런 것들을 해보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미디어 작가들도 많을 텐데 전시할 기회가 별로 없으니까 작가 자체가 잘 안 나오는 상황인거죠.


그런 맥락에서 매년 그런 것들을 할 수 있는 우리의 플랫폼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만든 것이 《디지털 플레이그라운드》였어요. 그 다음해에는 해킹을, 그 다음에는 오픈 소스를 주제로 해서 지속해나가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해당 주제를 가지고 작업하는 작가들이 많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그 다음에 시도한 것이 미디어아트 워크샵이었습니다. 현대미술이 없는 말레이시아의 어느 동네에 작가들을 데리고 갔어요. 작가들도 사실 전시 자체에 대한 회의감을 느낄 때가 있거든요. 전시 밑에 작가 이름이 들어가지만 전시가 끝나고 나면 남는 게 없다는 느낌같은 것들.


그런 작가들을 설득해서, 전혀 모르는 곳에 가서 교육을 해보자고 했어요. 그렇게 미디어아트 워크샵을 말레이시아에서 5년 정도 진행했죠. 매년 겨울방학에 SAC3(Sabah Animation & Creative Content Centre)라는 곳에 가서 작가들이 하는 다양한 것들을 풀어놨어요.


송호준 작가가 가서 인공위성 이야기도 하고, 방앤리 작가들도 가서 웨어러블 컴퓨팅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도 했죠. 현재는 그렇게 갔던 작가들이 애니메이션 센터와 연결이 되어서 인도네시아에서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요.


2016년에 했던 《design without Design》에서도 미디어 관련 작품들이 있었죠. 《design without Design》의 경우는 미술관에 방을 여러 개 만들어놓고 번호를 붙여놨어요. 그리고 한 달 동안 거기서 만들어지는 걸 그대로 보여주는 전시였죠.


시작은 완전히 비어있는 텅 빈 공간에서 시작해서 전시가 끝났을 때 공간이 다 차서 완성되는 기획이었어요. 그 안에서 워크샵들을 진행한 거죠.


이 기획을 만든 이유는, 전시를 만드는 게 너무 소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만드는 사람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리서치를 해서 짠, 하고 보여주지만, 정작 보는 사람들은 이 공부하는 과정이 없으니까 뭔지 잘 모르잖아요. 그래서 아예 그 과정을 다 오픈하자는 기획이었는데, 다들 재미있어하고 신기해하셨어요.


요즘 제가 관심있는 건, 이 하나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보는 일이에요. 작업들이 펼쳐져 있는 것보다 하나를 깊게 파는 거죠. 그랬을 때 나머지 작업을 이해하기도 더 좋아요. 그런 기회들이 잘 없는 것 같아서, 요즘은 그렇게 계속 해부학을 하는 중이죠.


ⓒ오창동



공간의 역할과 고민들


토탈미술관에서 굉장히 많은 프로그램들이 돌아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공립기관이 아닌 상황에서 예산을 항상 생각하셔야 할 텐데, 기금 사업들도 많이 하시죠?


많이 하죠. 저희가 프로그램을 많이 하고 있지만, 사실 그 중에는 돈이 안 드는 것들도 많아요. 4년 째 하고 있는 월요살롱 같은 프로그램은 예산없이 꾸리고 있는 것들 중 하나입니다. 올해는 코로나의 문제로 조금 일찍 끝내게 되었지만요.


그런데 최근에는 포맷을 좀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최근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하면 기금을 받지 않고 사업들을 꾸릴 수 있을까, 하는 점입니다. 기금은 말하자면 나랏돈으로 문화예술을 한다는 건데, 아무리 자유롭게 한다고 해도 어느 정도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한편으로는 그래서 점점 더 예술이 재미없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기금을 받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설득해야 하는데, 이말은 결국 심사를 하는 전부를 설득해야 한다는 뜻이죠. 열 명 중 한 명에게 100점을 받은 예술이 아니라 모두에게 50점을 받은 예술이 뽑히게 돼요.


미술사를 들여다보면, 옛날에는 어디 구석에서 자기네들끼리 모여서 이상한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예술이었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의 배경을 가진 예술대학 출신들이 예술가가 되곤 합니다. 이 바운더리가 너무 뻔해진다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전시를 하는 것이 정말 의미가 있을까, 이런 이야기를 관장님과 많이 하고 있어요.


사립미술관은 사실 언제 닫아도 되는 곳이기도 하거든요. 이제는 대안공간들도 너무 많고, 독립공간들도 많죠. 국립현대미술관도 분관이 네 다섯 개, 서울시립미술관도 분관이 아홉 개, 열 개 이렇게 가지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과연 우리는 뭘 하는 것이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오창동


역할에 대한 고민이 많이 드실 것 같습니다. 특히나 사립미술관으로서 예산, 경제적인 부분을 모른 척할 수 없을 텐데요.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한 가지 얘기하자면, 요즘에는 주식을 하고 있어요. 자칭 ‘한주 신보슬 선생’이라고. (웃음) 한 주씩만 사거든요. 토탈미술관에서 전시를 했었던 게리 힐 작가님이 시애틀에 사시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알게 된 것이, ‘데이 딜러’시라는 거예요.


돈을 벌려고 하시는 거냐고 물었더니, ‘이게 내가 본 세상이 정말 맞는지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대답이 돌아왔어요. 저도 거기에 배움을 받아서 한 주씩 사고 있죠.


내년에 저희 아트랩 주제가 농업과 창업이어서, 씨앗 관련된 회사와 경운기 만드는 회사 주식을 하나씩 샀어요. 올해 만든 3D 프린터로 농업시설 화보 같은 걸 출력하고, 실제로 농작물을 키워서 파는 작업들을 하려고 계획하고 있거든요.


주식이라고 해도 거창하게 하는 게 아니고, 하나 사면 3,400원, 이래요. 그런데 너무 재미있었던 게, 사고 나니까 오르는 거예요. 조사를 해보니 농기구가 로봇공학, 5G, 자율주행과 붙어있어요. 농사를 짓는 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농사가 자동화가 되니까 최첨단 기술들이 다 물려있는 거죠. 그런 걸 관찰하는 재미로 주식을 하고 있어요.


문화예술계의 가장 큰 문제는 결국 경제개념이 확실하지 않은 게 아닐까 싶어요. 지금 제가 고민하고 있는 것 역시도, 경제개념이 없으면 기금 구조에서 영영 벗어날 수 없겠구나 하는 것이거든요.


내일 모레 50에 주식을 한 주만 살 수 있었다는 걸 이제 깨달았다는 것,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고 현대미술을 하고 있었다는 게 정말 심각한 것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보슬 ⓒ오창동



변화하는 것들


흥미로운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코로나 팬데믹도 그렇지만, 최근은 상당한 변화의 시기인 것 같은데요.


글로벌의 시대는 이제 끝난 것 같아요. 베니스 비엔날레 같은 행사들을, 과연 이제 제대로 열 수 있을까요? 제가 지금 관심 있는 건 작가 한 명, 작품 하나예요. 작품 하나에서도 비엔날레 급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비엔날레에 가서 겉만 훑고 오는 게 정말 의미가 있나 싶은 거죠.


비엔날레는 솔직히 말하면 비즈니스를 하러 가는 것이기도 하는데, 그런 비스니스로 돌아가던 미술 시대가 끝나가는 것 같아요. 그렇게 비행기를 타고 돌아다니는 ‘제트 플라이트 큐레이터’라는 분들이 만드는 시대가 이제는 저물고 있어요.


오히려 다른 프로젝트로 작가와 만나는 기획들이 있을 거라는 것이죠. 하고 싶은 것 중에 하나는 ‘원피스’라는 전시인데요. 미술관에 작품 한 점만 가져다 놓는 거예요. 그리고 그 하나에 얽힌 이야기들을 다 전시로 풀어내는 거죠. 말하자면 비엔날레와 정반대의 이야기로 볼 수 있겠습니다.


코로나가 많은 것을 바꾸어 놓기도 했지만, 비대면이라 오히려 좋은 점들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전시가 온라인화되는 것에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봐요.


온라인 전시는 전시의 대체재가 될 수 없습니다. 전시장을 360도 VR로 촬영해서 온라인으로 열어놓은 것을 과연 전시라고 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들이 많이 나오고 있죠. 저희도 내부적으로 많은 토론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전시를 만들어야 한다고 봐요.


단순히 전시를 카피한 것이 전시가 될 수는 없다는 거죠. 다만 새로운 방식의 전시가 무엇이 될 수 있을지는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젊은 큐레이터들에게는 오히려 기회라는 생각도 들어요. 훨씬 더 익숙할테니까 말이죠. 모든 것을 유튜브에서 검색하는 세대, 그런 세대가 새로운 걸 생각해낼 수 있지 않을까요?


토탈미술관 《사랑의 전시》 전경 ⓒ오창동


모든 영역이 바뀌는 현실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시기지만, 물리적으로 접근과 경험이 중요한 예술에서는 더더욱 조심스럽게 생각해봐야 하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변화의 시점에서 앞으로 해보고 싶으신 것들이 있다면요?


요즘에는 ‘드아펠De Appel’ 같은 곳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드아펠은 네덜란드에 있는 큐레이터 인스티튜트 같은 곳인데요. 지금 대학에도 기획과 관련한 내용들을 가르치는 곳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너무 이론에 집중되어 있어요.


실제로 현장에서 쓸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거죠. 진짜 실무로 하는 것들, 기획서 쓰고 예산 따오고, 한 시간 안에 액자 열 개 거는 법, 장비 쓰는 법, 영상 편집하는 법. 전부 다 전시를 기획하는 데 필요한 일이고, 이걸 다 할 줄 알아야 누군가에게 일을 시킬 수 있거든요.


전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면 사람들이 전시를 더 재미있게 볼 수 있기도 해요. 저희가 여수에서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과 함께 ‘방과후 큐레이팅’이라는 수업을 했었어요. 전시를 기획하는 모든 과정을 다 아이들에게 시키는 거죠.


“오늘 회관 가서 공간 사이즈 재 가지고 와라”, 그러면 아이들이 가서 사이즈를 다 실측하고 목업까지 만들어와요. 어디에 무엇을 놓고, 이런 내용까지 다 발표를 하게 했죠. 그런데 이걸 하고 났더니, 아이들의 뮤지엄 에티켓이 달라졌어요.


내가 만든 걸 사람들이 만지는 것도 싫고, 거기서 시끄럽게 떠드는 것도 싫고, 뛰어다는 것도 싫은 거죠. 그런 부분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나와요. 물론 부작용이라면 아이들이 전시를 안 보고 조명을 보고 있다는 점이 있지만. (웃음)


그 아이들이 1년이 지나서 6학년이 되었을 때 토탈미술관에서 전시를 하기도 했어요. 토탈미술관과 학교가 MOU를 맺고 학생들이 와서 사인하고 관장님과 사진도 찍었어요. 그런 경험이 있으면 미술관은 사실 그렇게 어려운 곳이 아니죠.


이런 것들은 국공립에서 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해요. 이런 것들로 시작해서 한국의 드아펠 같은 것으로 조금씩 전환을 해 나가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작가는 작가대로 필요한 부분들이 다 있을 테니까요.


이런 것들을 훈련하고 수업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든다면, 국공립이나 대안공간에서 할 수 없는 다른 것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전시가 왜 재미있는지 생각을 해봤더니, 작품 뒤의 이야기들을 많이 알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보는 것을 훈련시키지 않고 자꾸 보라고 하는 건 너무 폭력적인 거죠. 그래서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까서 이야기해주는 것,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현재도 정말 많은 것을 하고 계시지만, 앞으로 만들어나가실 교육과 관련된 부분들도 매우 기대가 됩니다. 오늘 인터뷰는 그럼 여기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신보슬 ⓒ오창동


ⓒ오창동